[카드뉴스] 커피보다 정을 마시는 달달한 다방커피

입력 2016-01-04 00:05
한국인에게 커피는 밥보다 자주 찾는 기호식품이 됐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1주일에 쌀밥을 7번 먹는 동안 커피는 12.3번 마신다고 집계했다. 연간 커피 소비량은 1인당 338잔(3.38㎏)이나 됩니다.

요즘 “커피 마시자”는 말은 “커피전문점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자”는 뜻으로 통합니다. 설탕과 프림이 잔뜩 들어간 다방커피는 아메리카노에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다. 최근엔 아메리카노 ‘가격 파괴’가 한창이어서 1000원대도 등장했습니다.

어느 골목에나 한두 개씩 커피전문점이 있는 시대에 기어코 다방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도심 가판대나 전통시장 주변에선 여전히 종이컵에 담긴 다방커피가 인기입니다. 왜 이들은 다방커피를 찾는 걸까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상붕(61)씨는 25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보리차를 끓여 먹던 커다란 주전자가 가스 불 위에 놓여 있습니다. 매점을 열어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전자는 계속 데워집니다.

주전자 옆에는 커피·프림·설탕이 든 유리병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매점 커피’ 제조법은 간단합니다. ‘2·2·2’. 종이컵에 커피·프림·설탕을 두 스푼씩 넣습니다. 물은 종이컵의 절반이 조금 넘게 따른다. 티스푼으로 휘휘 저으면 600원짜리 ‘추억의 다방커피’가 완성됩니다.

커피 주문은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이씨는 목소리로만 듣고도 누가 주문하는지 알아챕니다. 입맛에 맞춰 커피와 프림, 설탕 비율을 맞춥니다. 수화기 너머로 “커피 두 잔”이라는 주문이 새어나옵니다. 순식간에 블랙커피와 설탕커피가 만들어졌습니다. 커피 두 잔은 은색 쟁반에 놓여 배달됐습니다. 이씨는 “20년 넘게 여기서 장사하다 보니 누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다 안다”며 “시장 상인들은 잠도 못 자고 일찍 나오니까 대부분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매점에 직접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많습니다. 10년 넘게 광장시장에서 옷을 팔다 지금은 그만뒀다는 한모(71·여)씨는 집이 의정부인데도 굳이 이 매점을 찾아왔습니다. 한씨는 “여기까지 놀러 오는 건 커피 탓도 있다. 내 입맛대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니까. 몸에 좋든 나쁘든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게 좋다”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광장시장 안쪽의 또 다른 간이매점에서도 상인 이모(62·여)씨가 커피와 토스트를 팝니다. 한 잔에 700원 하는 커피를 공짜로 줄 때도 많습니다. 몸이 안 좋아 늦게 장사 나온 상인에게는 “추운 날 나오셨네, 몸은 좀 어때요”라고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커피 한 잔을 타 줍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몸이 풀린다며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심희정 기자 온라인 편집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