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29 합의직후 남북 6자수석회담 종용"…북한이 거부

입력 2016-01-02 01:57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2012년 북한과 미국 간 ‘2·29’ 합의 직후 ‘뉴욕채널’(북·미 간 비공식 협의창구)을 통해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적극적으로 종용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한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압박하려는 미국 측의 입장과, 남한을 배제하고 북·미 간 직접 협상 구도로 끌고 가려는 북한의 속내가 서로 부딪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개인 이메일에 따르면, 뉴욕 채널의 미국 측 담당자인 클리포드 하트 6자회담 특사는 2·29 합의 직후인 3월 4일 북측 카운터파트인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트 특사는 통화에서 북한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의 방미를 위한 비자 발급을 승인한다는 미국 국무부의 결정을 통보하면서 “이것은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한 합의(2·29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워싱턴이 앞으로 관계 진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리 부상은 그해 3월 7일부터 이틀간 미국 시라큐스대 맥스웰스쿨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미국 뉴욕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트랙 2’ 콘퍼런스에 참석하려고 미국 국무부에 비자발급을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하트 특사는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임성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현 외교부 제1차관)이 해당 콘퍼런스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리 부상이 임 본부장과 회동할 것을 북측에 제안했다.

하트 특사는 그러면서 “리 부상이 임 본부장과 만나는 것은 리 부상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의 회담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차석대사는 “즉각 평양에 보고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후 리 부상은 뉴욕의 트랙 2 콘퍼런스에 참석했으나, 임 본부장과의 별도 회동에 응하지 않았다. 리 부상은 임 본부장과의 회동 문제에 대해 외무성 본부로부터 지침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북한 수뇌부가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짓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리 부상은 당시 콘퍼런스에 참석했던 존 케리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을 만나 방북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측은 당시 2·29 합의 사항인 대북 영양지원을 조속히 얻어내기 위해 미국 측에 서둘러 후속절차를 밟아 달라고 요청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차석대사는 3월 4일 하트 특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북·미 민간교류협회(KAPES) 대표단이 중국 베이징으로 갈 것이니, 이번 주 안으로 미국의 5개 NGO(비정부기구)와의 양해각서를 마무리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에 하트 특사는 비공식으로 “미국 NGO들이 베이징에 가기에는 너무 급작스런 통보”라고 밝혔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