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우리가 죽음을 팔았나요?” 담배소매인들의 가처분, 새해 앞두고 기각

입력 2015-12-31 16:13 수정 2015-12-31 16:51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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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편의점 안으로 포니테일 머리의 여성이 들어선다. 판매대 너머 유리벽 안에는 또 다른 본인이 갇혀 있다. 이윽고 포니테일 여성이 내뱉는 한 마디, “후두암 1㎎ 주세요.”

유리벽 안의 또 다른 자아는 마치 일본군 위안부 끌려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듯 발버둥을 치며 고개를 흔든다. 담배를 받아든 포니테일 여성은 담배와 유리벽 안의 자신을 번갈아 보며 불길한 표정을 짓는다.

백팩 차림의 청년 역시 등장해 “폐암 하나 주세요”라고 말한다. 유리벽 안의 또 다른 자아 역시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며 안 된다고 절규한다. 그 뒤에 있던 수트 차림의 회사원은 “뇌졸중 두 갑 주세요”라고 한다. 연기로 뒤덮인 유리벽 안에서 이들은 쓰러진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는 마치 심판의 날 최후의 주문처럼 흘러나온다. “오늘도 당신이 스스로 구입한 질병, 흡연.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이름이 콱 박혀 있는 40초짜리 금연 광고다.

딱 1년 전 담배 가격을 대폭 올려 세수를 확보한 박근혜정부가 더 독하게 선보인 이 광고는 전국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소매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을 죽음의 상인으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으며, 담배피면 반드시 후두암 폐암 뇌졸중에 걸리는 것처럼 허위 사실을 말했다고 주장했다.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을 삼가라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담배를 질병하고 똑같이 부르는 것에 매우 섭섭해 했다.

전국 13만명 소매인들을 대표한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가 법원에 이 광고를 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2016년 병신년을 하루 앞두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용대)는 31일 담배판매인중앙회 회원 J씨 등 5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담배광고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광고는 흡연이 질병을 얻게 할 수 있음을 축약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흡연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으로 보인다”라며 “그 자체로 담배소매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흡연행위로 후두암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어도 담배 판매행위가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하다는 취지로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설령 문구에 비방 취지가 있다 해도 전국 담배소매인은 13만명 이상으로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정부의 이번 금연광고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행위로,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내용이어서 영업상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는 부정 경쟁 행위도 아니라고 법원은 결정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