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도 자녀 보내는 ‘숲속 유치원’

입력 2015-12-30 18:33 수정 2015-12-30 18:36
출처: NYT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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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꼬마 스텔린 카터 양은 유치원에 가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길 좋아한다. 까마귀, 부엉이, 박새 등 소리도 각자 다르다. 공원 숲속 커다란 나무 밑에 모인 20명을 좀 넘는 아이들은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 글자를 만들고, 진흙투성이 손으로 벌레를 만지며 수업을 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리는 숲속 유치원 ‘피들헤즈포레스트스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이 곳을 소개하며 미국 사회에 부는 대안교육 열풍을 전했다.

열린 지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이 유치원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불과 약 11km 떨어져 있다. 부모들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을 비롯해 변호사, 고위 재정공무원, 방송사 PD 등 소위 ‘잘나가는’ 이들이 많다. 하루 수업은 4시간씩이고, 수업료는 한 달에 760달러(약 89만원) 정도다. 2개 반에서 50명이 다니고 있는 이 유치원 대기명단에는 현재 아이들 51명이 올라있다. 시애틀에만 비슷한 유치원이 18곳이 있지만 쏟아지는 수요를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이 유치원은 최근 미국에서 인기인 ‘발도르프(Waldorf) 교육법’을 따르고 있다. 독일 발도르프학교에서 루돌프 스테이너가 시작한 이 교육방식은 설립자의 이름을 따 ‘스테이너 교육법’으로도 불린다. 구체적인 교육방식은 갈리지만 기본적으로 유아기에 ‘학습’보다는 ‘충분히 노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원칙이다. 야외수업을 강조하는 이유도 기존의 판에 박힌 수업에서 익힐 수 없는 상상력과 예술성 등 다양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유치원 수업이 과도하게 학업에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교실에서 나와 자연과 접할 기회를 만들자 주장하는 발도르프 교육법이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8.4%에 달하는 2~5세 유아 비만비율 역시 이유 중 하나다. 이 교육법에 따라 야외수업을 받은 아동들은 비만 비율이 확연하게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단체인 ‘네이쳐스타트얼라이언스’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이 교육방식을 따르고 있는 학교는 92곳에 달한다. 2008년 20곳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오전 9시에 수업이 시작하면 피들헤즈포레스트스쿨에 다니는 아이들은 비옷을 입고 고목을 오른다. 가끔 젖은 나무에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끼가 낀 웅덩이 아래 비밀 요새도 만든다. ‘들으며 걷기’ 수업을 할 때는 눈을 감고 주변에서 들리는 것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비와 바람, 때로는 무언지 모를 단어도 튀어나온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고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른다.

주디 랙키(34)는 세 살 나이인 딸 데시 소렐그린 양을 이 유치원에 보낸 학부모다. 랙키는 “교실 안에서는 선생님이 모든 걸 계획하잖아요. 여기서는 어떤 걸 보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라며 “마법 같은 곳”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훈련받은 선생님들의 보호 아래, 이 유치원은 아이들이 어떤 모험을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둔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지렁이를 장난감 깡통에 담아오면 지렁이가 어떤 집을 가장 좋아하는지 선생님과 대화하는 식이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수업이지만, 나름 규칙도 있다.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인 스텔린은 “벌레를 보면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예쁜 잎사귀를 보면 가져와서 우리 ‘마법 장소’에 둬야 해요”하고 설명했다. 공원길을 혼자 걷거나 나무막대기로 칼싸움을 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수레 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칼 없는) 해적놀이를 하고, 번개에 맞은 나무를 관찰한다. 직접 아이 하나가 들어갈 만한 ‘둥지’를 만들고, 어떤 날은 독수리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하며 즐거워한다.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보다(Notice)'다. “이 통나무에서 어떤 걸 봤어?”하고 선생님이 물으면 아이들은 “버섯을 봤어요”하고 대답한다.

모든 유치원이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실내 수업도 병행하며, 인근 학교와 협력 수업을 하는 곳도 있다. 미국 현행법상 건물이 없으면 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들헤즈포레스트스쿨 역시 이 때문에 오후 1시면 문을 닫아야 한다.

현실적인 불편함도 있다. 일단 알맞은 옷을 입고 와야 하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크다. 다섯 살 이하 아동이 밖에서 노는 게 적잖이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자주 감기에 걸리는 아이들도 있기에 이 아이들은 교사들이 특별 관리한다. 기온이 섭씨 15℃ 아래일 때는 실내에서도 수업한다. 주변 학교들이 휴교할 정도로 눈이 많이 올 때는 이 유치원 역시 쉰다.

데보라 스티펙 스탠포드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 교육법을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스티펙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실내에서도 얼마든지 블록이나 미술 활동을 통해 ‘모험’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서 “밖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는 건 좋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두는 건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피들헤즈포레스트스쿨을 세운 키트 해링턴은 “실내용 장난감은 그 어떤 것이든 ‘목적’이 정해져 있다”고 반박한다. ‘야외 교실’에서는 그 모든 게 놀잇감이고 관찰할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