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덕-이시카네 라인,길고 긴 협상 주도...이병기-야치 라인 재가동?

입력 2015-12-28 22:09

한일간 입장차가 워낙 크고 여론의 민감성까지 더해져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타결을 두고 외교부의 한 당국자가 28일 한 말이다.

한일간 격전지 최전선에는 이상덕(55)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상대역인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57) 일본 외무성 국제협력국장이 있었다.

한일은 2014년 4월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장급 협의를 개시했다.

이 국장은 1차 협의부터 28일 한일 외교장관 간의 최종 타결 하루 전 마지막 실무조율을 벌인 제12차 협의까지 1년8개월간 한국 측 협상을 이끌었다.

이시카네 국장은 지난달 11일 제10차 협의부터 이 국장과 대좌했다.

전임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국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지난달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의 첫 정상회담 이후 열린 협의부터 합류한 것이다.

이 국장은 10여 년 전 주일 한국대사관에 근무할 때부터 이시카네 국장과는 카운터파트로 일해온 인연이 있다.

이 국장은 위안부 협상 타결 직후 희끗희끗한 백발까지 더해져 초췌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이 국장은 "20년 이상을 끌어온 문제였고, 어려운 여건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얻어진 결과"라면서 "국민이 대국적 견지에서 잘 수용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시카네 국장에 대해서도 "과거 도쿄에서 카운터파트였는데, 위안부 협상에서도 마지막 협상을 종결하는 단계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 타결까지 이른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국장과 이시카네 국장의 뒤에는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있었다.

두 장관은 앞서 한일간 갈등현안으로 부각됐던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에도 회담을 통해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하기로 합의해 타협의 물꼬를 텄다.

당시에는 윤 장관이 도쿄로 날아갔고, 이번에는 기시다 외상이 아베 총리의 특명을 받고 방한해 위안부 최종타결에 종지부를 찍었다.

특히 그동안 한일관계에 대해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slow and steady)'를 강조해온 윤 장관이 위안부 타결을 계기로 기시다 외상과 관계개선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막후에는 이른바 이른바 '이병기-야치' 라인으로 불리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포진했다.

일본 언론은 지난 22~23일 아베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국장이 방한해 전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실장과 위안부 협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막후 채널 가동 후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최전선에서는 이상덕, 이시카네 국장과 윤병세 장관, 기시다 외무상이, 막후에서는 이병기 실장과 야치 국장이 나섰지만, 역시 이들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있었다.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없었다면 위안부 문제의 최종타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날 타결된 위안부 협상에 대해 한일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평가와 함께 "외교 담합"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는 가운데 이들 협상 주역에 평가는 역사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