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에 좋은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 쓴 강남순 교수 인터뷰

입력 2015-12-28 22:27

2015년 겨울, 세계는 유난히 암울하다. 유럽은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은 전 세계를 겨냥한다. 지구 반대편의 문제가 내 삶의 문제가 되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좋은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어떤 이슈에도 이론적으로 간결하면서 따뜻한 성찰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를 최근 만났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을 분석하며 미국 학계에서 인정받을 뿐 아니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인과 소통하는 그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학자 중 하나다.

그는 이달 저서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새물결플러스)’의 한국어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 머물면서 강연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의 강연장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은 물론 신학생과 보수 교단의 목회자 등 다양한 이들이 몰려왔다. 그들의 눈에서 강 교수는 갈증을 읽었다. 기존의 종교 또는 교회에서는 풀리지 않는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 이들의 눈빛이었다.

“좋은 종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누군가 주일 성수하고 교회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십일조 잘 내는 것이 좋은 종교인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 좋은 종교인은 예수가 하라고 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선 그렇게 이야기를 안 한다고 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를 보아야지, 그 손가락 자체만 보고 있어선 안 되지 않는가.”

그는 21세기 종교에 관한 논의와 관련,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신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신을 믿는 나는 이 세계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시대에, 종교는 이 세계에서 모든 이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책임있는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사는 것이 단순히 누군가를 전도하여 특정한 교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일까? 예수는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의 행위를 보고서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했다. 예수의 행적을 통해 보여주는 ‘종교’는 제도화된 종교 자체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대, 그리고 환대를 실천하는 삶이다.”

그는 새 책에서 ‘코즈모폴리턴’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2013년 영어로 ‘Cosmopolitan Theology’가 출판됐을 때 미국 종교학회에서 이 책에 대해 논의하는 세션이 열리기도 했다. 코즈모폴리터니즘 담론을 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접근한 학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코즈모폴리턴이란 개인들이 두 종류의 소속성, 즉 특정한 국가와 지역에의 소속성과 우주에 속한 ‘우주의 시민’으로서의 소속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모든 인간이 국적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의 태양 아래 있는 코즈모폴리턴, 즉 세계 시민이라는 개념은 기독교적 용어로 바꾸자면 인간 모두가 신의 자녀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신은 기독교인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냈다고 했다. 즉 신의 인간과 세계를 향한 사랑은 무차별성의 사랑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성별, 인종, 계층, 국적, 종교 등을 넘어서 모든 인간과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며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다.”

그는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가 삭개오를 바라보고 그의 집에 거하겠다고 하는 대목에서 예수의 무조건적인 환대를 포착해낸다. 또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이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료 시민’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성경속 코즈모폴리턴의 개념을 읽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동시에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이웃사랑과 환대, 연대의 개념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걸까.

“소외에 대한 위계를 결정할 순 없다. 다양한 양태를 지니고 있는 소외들은 그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처한 정황에 따라서 각기 다른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개인적인 정황에서 내가 관계할 수 있는 이웃이, 지금 나에게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게 무엇일까. 세월호 미수습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됐고. 미등록이주민의 자녀들이 학교에 못 다니는 것도 문제다. 또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 차별, 편견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는 성서가 해답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음’을 던지고 있음에 주목하라고 했다. 한국 사회는 공교육의 폐해로 근원적으로 ‘물음’을 사라지게 한 사회다. 그래서 종교 안에서도 진지하게 질문하고 사유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자. 예수는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했고, 나그네 됐을 때 영접했다’고 한다. ‘그랬구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럼 21세기에 사는 나에게 누가 과연 배고픈 사람일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우리가 성탄절을 보내며 예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 예수가 있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가 이웃이며, 구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이웃 사랑에 대해 우리가 씨름해야 할 무수한 질문들이 있다. 누구를 이웃의 범주에 포함시키는가, 그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의 구체적이고 사회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씨름하지 않고 무작정 성서를 읽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성서의 심오한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기독교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예수적 시선을 따르기 위한 철학적 담론이자 사회정치적 실천이다. 미국에서 이 주제로 학술적인 모임 외에도 평신도 지도자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콘퍼런스에서 강연을 했는데 매우 긍정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도 이 개념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 이해에 빠져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이나 교회가 이 코즈모폴리턴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기독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터전을 마련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인이나 비종교인, 그리고 기독교 평신도나 목회자가 이 책을 읽기 바라는 이유다.

“한국교회가 자본주의화된 세상에서 물질만능주의적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게 심각한 문제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일류대학 가게 해 달라고 또는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대학을 가서 또는 그 사업을 통해, 예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이웃 사랑의 과제와 책임을 보다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기도하면서 자기 결단을 할 때 비로소 예수의 가르침에 맞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기독교 교리 자체의 절대화에 의해서 예수를 왜곡하지 않기 바란다.

“교리는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좌표일 뿐 진리 자체가 아니다. 교리는 시대에 따라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하게 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가 씨름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예수는 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책임있는 삶을 살라고 하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강남순 교수는 누구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한 후 미국 드류대에서 철학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국에서 가르치다 영국 캠브리지대 신학부 계약교수로 지냈다. 이후 감신대 초빙교수로 초청받아 한국에 와서 2년간 가르치다 ‘부부 전임교수 임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 성차별적인 결정에 맞서서 학생, 사회운동단체들과 연대해서 싸웠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감신대의 부부임용 불가 결정이 부당하다는 최종판정과 복직 권고를 받아냈으나 학교 측은 거부했다. 2006년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의 교수로 임용돼 한국을 떠났다. 현재 이 대학의 종신교수로서 정교수로 있으며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 현대 철학적 신학적 담론을 강의하고 있다. 영어권과 한국어권이라는 두 세계에서 학술적인 글과 대중적인 글, 두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 다층적 소통을 하고 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전호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