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난달 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이 타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4월부터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첫 정상회담 이전까지 모두 9차례의 국장급 협의를 했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하던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 가속화'에 합의하면서 동력을 받기 시작했다.
정상 간의 협의 가속화 합의에 따라 양국은 11월11일과 지난 15일 제10차, 11차 국장급 협의를 잇따아 여는 등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협의를 가속화하는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내용에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연내 타결은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뜻밖의 호재는 외부에서 왔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우리 법원이 17일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여기에다 엿새 뒤에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일관계 개선에 새로운 악재로 등장했던 이들 두 사안이 잇따라 해소되면서 일본 내의 분위기는 급반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무죄판결 직후 한일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가 아베 총리와 기시다 외무상으로부터 잇따라 나왔다.
특히 가토 전 지국장 사건과 관련해 우리 외교부가 법무부 측에 "일본측의 선처 요청을 참작해달라"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 분위기 반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산케이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일본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들 두 가지 갈등 사안이 해소되면서 이른바 '이병기-야치' 라인이 가동됐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일본 언론은 지난 22~23일 아베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장이 방한해 전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위안부 협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기시다 외무상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내 방한하라는 특명을 내림으로써 상황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한일은 28일 외교장관회담과 하루 앞서 실무차원의 최종 조율을 위해 제12차 국장급 협의에 합의했다.
한일은 막판까지 협상 주도권을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으며, 협상 내용을 놓고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 측에서 언론을 통해 확인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한일간에 장외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일본측이 우리측에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우리 정부가 이전하기로 했다는 보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이 "저의가 무엇이냐"며 비판에 나서는 한편,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법적책임이 종료됐다는 일본 측의 주장을 겨냥해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 일본의 법적책임이 남아있다는 점을 우회적 방법으로 지적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이병기-야치 라인 가동” 협상 막전막후…산케이 지국장 판결후 급물살
입력 2015-12-28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