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위안부 법적책임 우회” 역풍 가능성…여론설득 숙제

입력 2015-12-28 17:12

한국과 일본은 24년간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28일 마침표를 찍었지만 일본의 법적책임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 정부가 '도의적' 등 수식어 없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한 첫 번째 사례다.

그러나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은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일 양국이 '메울수 없는 간극'인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 이른바 '창조적 모호성'을 발휘한 것이다.

'책임'에 아무런 수식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우리 정부는 앞으로보 일본측의 법적책임을, 일본측은 도의적 책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당장 기시다 외무상은 회견 후 일본 취재진을 만나 한국이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이 출연하기로 한 예산의 성격과 관련해 "배상이 아니다"면서 법적책임을 부인했다.

한일간의 '그레이존(회색지대)' 활용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965년 한·일 양국의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기본조약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최대 난점은 1910년 일본이 한반도를 병탄한 한일강제병합조약이 법적으로 유효한 조약이었는지에 대한 서로의 입장차였다.

일본측은 "당시에는 유효하게 체결됐다"고 주장했고, 우리 측은 "강압·불법에 의한 조약으로 체결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했다.

결국, 양측은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표현으로 이 문제를 우회했고, 현재까지도 한일 양국은 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나,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경우 후폭풍을 부를 수 있다.

1964년 박정희 정부가 비밀리에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우리 국민은 굴욕외교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는 6·3 항쟁으로 이어졌다.

2012년 추진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정보보호협정) 체결도 '밀실처리' 논란 끝에 무산됐다.

다만, 이번 회담 결과를 같은 선상에서 보긴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정부 예산으로 10억엔 상당을 출연하기로 했는데, 이는 사실상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이 해소된 만큼 정부 예산을 통한 보상은 불가능하며 민간의 모금 등을 통한 인도적 지원 정도가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관건은 피해자들과 국민 여론이 이번 합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문제를 우회한 것은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 피해자들이 대거 반발할 경우 이번 합의는 빛이 바래게 된다. 양국이 기대했던 한일 관계의 개선국면 진입도 기대만큼 본격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앞 위안부 소녀상의 이전 문제와 관련해 관련단체와 협의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점도 '불씨'가 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께 이번 합의의 의미를 최대한 잘 설명 드리고, 피해자의 명예 및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