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장관, 한국청구권협정 거론 배경은?...일각선 제3의 해법 가능성 시각

입력 2015-12-27 20:43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의 '일본군 위안부 담판'을 하루 앞둔 27일 한일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언급을 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윤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를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저희 입장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장관이 한일 청구권 발언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 조율을 위한 제12차 한일 국장급 협의를 불과 몇 분 앞둔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윤 장관의 한일 청구권협정 언급은 위안부 문제의 핵심 쟁점인 일본의 법적 책임을 염두에 둔 의도된 발언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일본 측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종료됐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1항의 한국과 일본 두 나라와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권리·이익·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위안부 문제의 해법에 대한 일본 측의 접근은 '도덕적 책임', '인도주의적 지원'에서 이뤄져 왔다.

반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가 반인도적 행위이기 때문에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 기속되지 않으며, 따라서 일본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이같이 한일이 법적책임 문제에 대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윤 장관의 언급은 표면적으로는 일본 측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일 장관회담에 앞서 최종 조율을 위해 열린 제12차 양국간 국장급 협의에서 양측이 핵심 쟁점이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 이른바 '창의적 해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 장관의 언급은 새로운 각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창의적 해법'은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 한일 양측이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창조적 모호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다.

법적책임 문제에 대해 한일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파국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창조적 모호성'이 들어간 표현으로 우회로 모색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윤 장관의 한일 청구권 언급도 '창조적 모호성'을 통한 위안부 문제의 극적 타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석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창조적 모호성 발휘를 통한 위안부 문제의 극적 타결시 '원칙을 저버렸다'는 일각의 반발을 우려해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법적책임 문제에 대한 교통정리는 위안부 협상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 고리다. 이 문제가 풀려야 아베 총리의 사죄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 나머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최근 일본의 언론플레이 논란 등으로 한일이 치열한 장외전을 벌이면서 회담 전망에 대한 비관론도 한때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윤 장관의 한일 청구권 협정 언급과 국장급 협의에서의 '창의적 대안' 모색 소식으로 외교장관회담에서 극적 타결에 이를 수 있다는 기대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윤 장관과 기시다 외상이 28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부가 이날 기자들에게 위안부 협상 관련 주요 일지와 일본 측의 사죄표명 사례, 아베 총리의 위안부 관련 언급 등을 모은 참고자료를 배포한 것도 '회담 낙관론'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