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헌신하다 헌신짝 된 부모 재산 돌려받는다”

입력 2015-12-27 10:08
사진=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공연 포스터.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부모봉양을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봉양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면 상속받은 재산을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같은 판결은 효도계약을 토대로 재산을 상속했음을 입증할만한 각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A씨가 아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의 말소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03년 12월 ‘아버지와 같은 집에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서울에 있는 대지 350여㎡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아들에게 증여했다. 부자는 조건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계약 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기도 했다. 이후 A씨 부부는 2층에, 아들은 1층에 살았고 A씨는 주택 외에도 임야 3필지와 주식 등을 팔아 아들의 회사 빚을 갚아주기도 했다. 아들이 외국출장을 오갈 때마다 대면해 기도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아들은 달랐다. 한집에 살면서 식사도 함께하지 않았고 편찮은 모친의 간병은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 도우미에게 맡겼다. 아들은 급기야 A씨 부부에게 요양시설을 권했다.

A씨는 주택을 매각해 부부가 생활할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며 등기를 다시 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는 막말까지 했다.

A씨는 결국 딸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아들이 서면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직계혈족 부양의무가 이미 민법에 규정된 만큼 ‘충실히 부양한다’는 조건은 일반적 수준의 부양을 넘어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원은 12년 전 부동산을 넘긴 게 단순 증여가 아니라 받는 쪽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부담부 증여’라고 봤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부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계약이 이행됐더라도 해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양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근거가 없고 오히려 패륜적인 말과 태도를 보였기에 부모가 부동산 소유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효도계약을 입증할 각서가 있었기 때문에 부친이 승소 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불효자인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재산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부연했다. 민법 556조애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증여를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등기이전 등으로 재산을 완전히 넘기기 전에만 가능하다. 같은 법 558조에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에 다수의 네티즌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효도계약이 오간 자체도 안타까운데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소송까지 제기됐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는 반응이다. “아들한테 각서까지 받아놓다니 참 안타까운 부자다” “부모가 자식의 인성을 미리 파악하고 각서까지 받은 건 현명한데,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 판결이다” “자식한테 부양받지 말고 차라리 시설에서 편하게 생을 누리는 게 나을 듯하다” “자식만 보고 헌신하다 헌신짝 된 대표적인 사례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