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28. 김현탁 연출의 재창작 “억압의 분노 하녀들”

입력 2015-12-24 09:24
극단 성북동비둘기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공간>을 들어가다



비가 내렸다. 김현탁의 극단 <성북동 비둘기> 위치는 성북초등학교 입구 옆으로 경사도로를 따라 중간에 위치한 지하공간이다. 연출이 올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작품이 쟝 주네 ‘하녀들’을 재창작한 <하녀들-apply to a play>이다. 30분전에 도착했다. 5분전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에 옆 일상(日常) 이라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건네받은 공연안내 책자를 뒤적거렸다. 관객들이 ‘연극실험실 일상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채웠다. 간이식 철재의자 100여개가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뒤쪽 세줄 정도만 객석이다. 최대 30~50여명의 관객에게만 허용되는 공연이다.



객석으로 구분된 철재의자 맨 앞줄 좌측에 앉았다. 천정을 올려봤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없고 빛바랜 시멘트 골격 시선은 관객을 누른다. 지하의 날것은 무대로 변형된다. 벽면에는 생활물품들이 붙어있고, 연극연습 도구들이 몸체를 들어낸다. 김현탁 연출에게는 텍스트의 생명력을 부착하고 이어주는 재료들이다. 무대구조의 상상은 깨지고 상상의 여백은 김현탁스러움으로 채워진다. 김현탁 연출은 바로 이 일반화되고 정형화된 풍경과 삶의 재현성에 매스를 가하면서 드라마는 재조립된다. 연극 구조를 형성하는 일상의 날것은 창조된 텍스트를 형성하고 오브제들은 확장된 언어가 된다.



공간은 ‘하녀들’을 밝히는 형광등 조명 2개와 마이크와 연결된 작은 스피커가 전부다. 연출은 주어진 최소한의 재료(형광 스탠드 조명 2개, 배우 세 명, 철재의자, 벽면의 환풍구, 박스 의상 소품과 지하 공간, 생활물품)들로 감정의 전류에 스위치를 올리고 지하 빈공간은 ‘하녀들’의 욕망의 놀이무대로 채워진다. 마담의 폭력성은 마이크로 감정을 확장시키고,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스피커의 굉음은 폭력성의 절정의 구도를 형상화 시킨다.



하녀들 무대(지하) 바닥은 혈흔 자국들이 화폭을 형성하며 텍스트를 흡수한다. 원작의 다락방 하녀들의 놀이 공간은 지하로 이동되면서 하녀들의 갈라진 내면과 계급적 바닥의 현실은 지하의 습함을 그대로 흡수한다. 두 배우는 하얀 반팔티를 입고 있다. 선명한 핏자국을 들어내며 속죄하는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철재 의자에 앉아 손바닥을 비비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관객들이 검정색 철자의자에 앉아 이 두 배우가 땀 흘리며 뿜는 무언의 속죄의 속도를 따라간다.



연출은 의도된 감정의 공간으로 관객들의 시선과 오감을 조여 맨다. 간이식 철재의자는 장면으로 배우들의 도구로, 내면의 욕망과 극중 인물의 감정을 올려놓는 언어로 이음새를 연결하고 상상력을 강타한다. 지하 공간에서 올라오는 공포, 섬뜩함, 괴기스러움은 관객들도 하녀들(쏠랑주·끌레르)의 내면성에 탑승시킨다.



배우들은 정형화된 등장인물의 내·외형을 거부하고, 인물의 감정과 오감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흡수하고 빨아들인다. 신체로 강렬하게 감정의 전류를 보내면서 몰입의 공기가 새지 않도록 감정을 세우고, 내면을 자극하면서 긴장성을 유지한다. 내면의 이완의 감정 상태를 거세한 배우 쏠랑주(조서희 분) 와 끌레르(이송희 분)는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극중인물의 억압된 욕망을 강하게 발화시킨다. 마담(김미옥 분)은 극중 인물이지만 진행되고 있는 연극 하녀들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연극적 현실로 유쾌하게 환기시켜 놓는다. 관객은 마담의 의외적인 행동과 대사를 통해 연극이 진행되는 현장으로 환기되고 하녀들은 연극이라는 진행성으로 속도를 유지한다. 연출은 배우와 관객의 사이를 공동화된 감정으로 스위치를 연결한다.



연출에게 재창작의 개념은 원작 서사의 시·공간을 이동하고 극적요소에 이음새를 연결한 재창작의 개념보다는 텍스트해체와 이야기 뼈대의 기초골격만을 남겨둔 재창조다. 연출의 연극수용의 방식은 실험적인 공격성으로 돌진한다. 무대를 비우고 채워내며, 전위적인 작업스타일로 텍스트의 뼈대를 난도질하고, 배우들의 강렬한 날것의 수행적인 움직임과 언어를 통해 텍스트에 새 생명을 부착시킨다. 시·공간, 배경, 극중 인물, 동작, 움직임, 감정, 인물의 대립, 갈등, 메시지, 배우들의 정형화된 재현성과 현실풍경을 거세하고 연극실험의 화학 반응을 강렬한 온도로 지하공간을 채워 넣는다.



발가벗겨진 텍스트에서 배우들의 생산적인 활동은 창조된 텍스트로 이식된다. 놀이, 의외성, 환기, 생산적인 움직임과 몸의 활용, 역 배치 등으로 탈구조적인 수용성을 들어내면서 재창작을 재활용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열녀춘향>(2015), <자전거>(2014), <세일즈맨의 죽음>(2013), <혈맥>(2013),<잠자는 변신의 카프카>(2015), <망루의 햄릿>(2015)등은 텍스트를 재활용한 재창작의 개념보다는 김현탁 브랜드로 흡수한 창작이다.



마담을 죽이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뒤 쏠랑주는 끌레르 머리에 커피를 천천히 쏟아 붇는다. 죽음을 상징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암전의 지속성은 체험적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지배의 공포와 분노의 사슬을 절단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욕망은 놀이로써만 존재되며, 내면의 죽음으로 응고된다. 인간의 욕망은 변화와 행동으로 혈전된 끌레르의 내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극실험의 체온을 느끼는 작품이다. 12월27일까지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