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공무원, 벌금형에도 퇴출… 의전생은 183명 몰카도 ‘무죄’

입력 2015-12-23 00:10 수정 2015-12-23 08:36

공무원 조직이 성범죄 척결에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섰습니다. 앞으로 공무원이 직위나 직무를 이용해 부하 직원 등을 대상으로 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당연퇴직 처분을 받는데요. 사회적 명예가 중시되는 전문직 중에서는 가장 먼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인사혁신처(혁신처)는 이 같은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공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22일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금고형이 퇴출 요건이었다면 그 심사 요건을 완화시킨 것입니다. 일부 재판에선 공무원과 의사 등 사회적 명예직의 성범죄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고 금고형은 자제해왔는데요. 판결이 그들의 직업을 박탈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였습니다.

스스로 개혁하며 모범 보인 공무원 조직

국가공무원법은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공무원에 대해 집행 종료 후 5년 간 결격사유를 두어왔습니다. 금고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결격시키는 이 기준은 변호사법과 공인회계사법, 세무사법, 공인노무사법과 변리사법, 사회복지사업법과 의료법에 영향을 미쳐 전문직들의 성범죄 처벌의 기준이 되어왔는데요.



하지만 최근 금고이상의 형이라는 제한 요건이 성범죄를 근절하는데 오히려 면책 조항이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전남 지역의 한 의학전문대학원생(의전생)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고도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 그 예입니다. 판사는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의전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다며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의료계 개혁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 한다”

의사가 수면내시경을 받는 여성을 성추행한다거나 183명의 몰카를 찍는 의전원생이 있는 등 올해 들어 부쩍 의료계의 성범죄 사건이 부각됐습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은 구금이 아닌 벌금형일 때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하지만 원 의원의 개정안은 곧 파기되고 말았습니다. 의료계가 원 의원이 창업자로 있던 풀무원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벌여가며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한 의사는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가정하고 면허박탈을 거론하고 있다”고 부르짖었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에서는 “의료인은 환자와의 관계, 윤리성·책임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으로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면서도 “결격사유 제도는 대상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제도로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며 법안을 반려했습니다.

또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의 형평성, 성범죄 외의 흉악범죄 경력과의 관계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언했습니다. “금고이상 형을 받은 성범죄자에게 결격사유를 둔다”는 공무원법이 판단의 기준이 됐습니다.

직종마다 천차만별인 ‘사회적 명예’

반면 육군사관생도였던 한 20대는 2012년 주말 외박 때 여자친구와의 성관계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퇴학 처분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적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퇴학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며 취소 처분은 거둘 수 있었지만, 결국 그는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범죄가 아닌 행동에도 다른 전문직군에 비해 유례없이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공무원 개혁, 다른 전문직에도 영향미칠까?

인사혁신처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공무원 개혁의 연장선에 닿아있습니다. 성범죄 척결에 금고형 이상만 결격사유를 둔다는 조항을 공무원이 먼저 나서 폐기시킨 것이죠. 이런 개혁이 다른 직종에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공무원들에게선 “우리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가정한다”거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발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