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명 女몰카 의전생 ‘무죄’ 여친과 성관계 육사는 ‘퇴학’

입력 2015-12-22 10:16 수정 2015-12-22 15:00

“의대무죄 군대유죄?”

주말 외박 때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육사 생도의 소식에 네티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대법원 판결로 퇴학 처분이 취소되고 밀린 보수를 받게 됐는데요. 183명 여성의 몰카를 찍어온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은 피해자의 처벌 요구에도 한 학기가 지나서야 조치를 하며 두 학생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여자친구와 성관계 한 육사 생도, 결국 자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5부(부장판사 박이규)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던 A씨가 국가에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과 달리 “국가가 A씨에게 72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2일 밝혔습니다. A씨는 2012년 11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육사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는데요. 주말 외박 때 여자친구와의 성관계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습니다.

A씨는 2013년 서울행정법원에 육사를 상대로 퇴학처분 취소 소송을 내 승소하며 취소 처분은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는 지난해 5월 휴학했고, 손해와 위자료 지급 소송을 낸 1심에서 패소한 직후인 그해 9월 자퇴를 했습니다.

183명 몰카 찍은 의전원생, 기소 유예

육사생에게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던 것과는 달리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여성 183명의 몰카를 찍어온 의전원생 B씨에게는 온정적인 대우가 이어졌습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21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으로 입건된 B씨에게 성폭력 사범 재발방지 교육 프로그램 이수 조건부 불기소 처분을 내렸는데요. 검찰은 B씨의 범죄가 우발적이었고 그가 잘못을 반성한다는 이유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발적 범죄라고 하기엔 피해자의 수가 183명에 이르고 가해자 역시 에스컬레이터에서 치마 속을 찍은 후 역사 밖에서 피해자의 얼굴과 뒷모습까지 찍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습니다.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대통령 장학금까지 받은 학생이 저지른 범죄라 여론의 안타까움도 컸습니다. 소속된 의학전문대학원에서조차 피해자의 처벌 요구를 한 학기 동안 묵살했습니다.

의전원생에 유독 관대한 성범죄 처벌

의료계의 성범죄에 기소 유예나 벌금형이 내려지는 이유는 그들에게 내린 판결이 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해칠까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현행 의료법은 구금형이나 집행유예일 경우 면허를 일시적으로 취소하거나 취득을 집행유예기간동안 제한하고 있는데요.



최근 전남의 한 의전원생의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해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한 사건도 이 때문입니다. 판사는 집행유예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 의전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다고 판시했죠. 자신의 판결로 의사 면허 취득이 늦춰질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무산된 의료법 개정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할 수 없다”

올해 초 수면내시경을 받는 여성을 성추행하는 등 의사들의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자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국회통과가 무산됐는데요. 개정안에는 구금이 아닌 벌금형일 때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해 의료계의 성범죄를 뿌리 뽑자는 취지였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에서는 “의료인은 환자와의 관계, 윤리성·책임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면서도 “하지만 결격사유 제도는 대상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제도로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법안을 반려했습니다. 또 “죄질의 경중을 비교할 때 성범죄 외 기타 중범죄를 범한 의료인과 차별을 두는 개정안이 합당한 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는데요.

“자정 노력이라도…” 3년 6개월 간 강간·강제 추행 340여 차례

원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이 무산된 이유에는 의료인들의 집단 반발도 있었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가정하고 면허박탈을 거론하고 있다”며 반발했습니다.

당시 의사들 사이에는 풀무원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원 의원이 풀무원의 창업주였기 때문인데요. 풀무원 측이 “원 의원이 창업주인 것은 맞지만 20여년 전인 1996년 풀무원의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여론은 “모든 의료계를 예비 성범죄자로 모는 게 아니다. 다만 의료계 내에서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자정 노력을 보여주면 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이 발표한 전문직 범죄 현황자료에 의사들은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강간과 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의 수가 340여명에 달했습니다.



자정을 위한 요건은 갖춰져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의료인이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받을 시 10년간 취업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의전원생의 사례처럼 기소유예나 벌금형 처분을 받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두명의 물의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는 양심적인 의사들입니다. 면허 취소만이 해결책인 것은 아닙니다. 진정성 있는 약속이라도 필요합니다. 자정 노력의 결단을 보여줄 시점입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