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는 의미죠. 그런데 한 네티즌은 이 사자성어를 요즘 말로 번역하면 ‘헬조선(전혀 희망이 없어 지옥 같은 한국 사회)’이라고 했는데요. 처음 헬조선은 청년들의 취업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였죠. 이제는 사회 곳곳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 흔히 쓰는 단어입니다.
안타깝게도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보입니다. 2015년이 열흘 정도 남은 시점인데도 네티즌들을 뿔나게 만드는 소식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최근 이슈 중에는 ‘183명 몰카 의전원생 기소유예 논란’ ‘김광림 의원 친조카 인사 청탁 논란’ ‘강남구청 댓글 논란’ 등에 네티즌들이 격분했습니다.
한 의과대학원에 재학 중인 A씨가 183명의 몰카를 찍고도 우발적인 범죄였다며 선처됐다는 소식은 20일 전해졌습니다. 최근 여자친구를 4시간 넘게 감금·폭행하고도 1200만원 벌금형을 받았던 광주지역 의전원생에 이어 또 봐주기 논란에 휩싸인 건데요. 네티즌들은 해당 검사를 비하하는 ‘검레기(검사+쓰레기)’, 의전원생을 비난하는 사자성어라며 ‘금수저짱(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좋아 노력 없이도 성공하는 자녀가 최고다)’ 등의 신조어를 쏟아냈죠.
지난 9일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의 친조카 인사 청탁 논란에도 헬조선이란 단어가 따라붙었는데요. 김 의원이 친조카 B씨를 모 은행 본점이나 강남점으로 옮겨달라고 문자를 보낸 겁니다. 김 의원은 “금융권에 직접 청탁을 한 적은 결탄코 없다”고 해명했죠. 하지만 네티즌들은 “헬조선 만드는 주범” “헬조선 맞네”라며 김 의원을 비난했습니다.
8일에는 강남구청(신연희 구청장) 시민의식선진화팀 직원들이 서울시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 논란은 강남구청과 서울시가 악성 댓글을 두고 쌍방 수사를 의뢰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요. “헬조선 공무원들은 일과시간에 댓글 쓰는 게 업무” “헬조선 공무원 수준”이라는 등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2015년의 끝자락인데 헬조선이란 단어가 인터넷을 지배하다니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2015년을 결산하는 한마디를 남겨달라는 코너에도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이 메인을 이룬 한 해였습니다. 내년도 달라질 건 없을 듯 하네요”라는 ‘리플(댓글)’이 있더군요.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신조어가 생겨나는 걸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는데요. 그러기 전에 ‘아몰랑(아, 나도 모르겠어)’하지 말고 왜 이런 신조어가 생겼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필요한 것 아닐까요. 이런 신조어를 만든 우리 네티즌만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새해에도 네티즌들이 말하는 헬조선이 반복될까봐 조금 걱정입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모두가 ‘사이다(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상황)’를 외치며 웃을 수 있는 ‘글설리(글 작성자를 설레게 하는 리플)’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친절한 쿡기자] 2015년 인터넷 달군 ‘헬조선’… 이젠 잊혀질까요?
입력 2015-12-22 00:10 수정 2015-12-22 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