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21일 새정치 구상을 밝힌 가운데 그가 전날 트위터 등에 올린 한 편의 시가 눈길을 끈다. 지난 6일 탈당 전 안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대표에게 최후통첩성 발언을 쏟아냈을 때 문 대표가 일절 답하지 않은 채 그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 한 편을 올렸던 것에 대한 답처럼 읽힌다.
안 의원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듯 올린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마치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시는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 했으니까요 /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라고 이어진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남는 길과 떠나는 길,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떠나는 길을 선택한 자신의 처지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라는 다음 구절은 마지막으로 연결된다.
시의 마지막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로 끝난다.
사람들이 적게 갈 수밖에 없는 탈당의 길을 선택한 것이 결국 자신의 정치인생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란 점을 예측하는 한편 더 이상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실제 안 의원은 이날 새정치 구상을 밝히며 새정치연합과의 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점을 피력했다.
앞서 문 대표가 6일 올렸던 시는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였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로 시작되는 시는 마치 문 대표 본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한 것처럼 보였다. 흔들림 없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셈이다.
시는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로 이어진다.
고통스럽고 외로운 길이지만 가기로 마음먹고 목숨을 걸면 해가 지는 어려운 상황이라도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라는 의지로 읽혔다.
시의 마지막 연은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로 끝난다. 비록 지금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신념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왔다.
문 대표는 당시 안 의원의 발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책 행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체제로 서둘러 당을 전환하겠다는 정면돌파 전략이라는 정가의 해석이 나왔다. 실제 문 대표는 이후 시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의 시를 통한 대결 구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대선 출마 때도 각각 시를 인용해 심경을 피력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문 대표는 출마 선언문에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인용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로 널리 알려진 시구다.
안 의원도 얼마 뒤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를 애송시로 제시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나 하나 꽃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 말하지 말아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로 끝난다.
두 사람은 결국 손을 잡았지만 스스로의 바람을 담은 시구처럼 담쟁이로 벽을 넘지도, 꽃 피워 온 산을 타오르게 하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어려움 속에서도 내 갈 길을 뚜벅뚜벅 가겠다는 의미의 시를 내세웠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문재인)’거나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안철수)’라고 인용한 시구처럼 서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안철수 "가지 않은 길 가련다"…2012년 이어 올해도 詩로 행보 암시
입력 2015-12-21 08:55 수정 2015-12-21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