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옆을 걸었어요. 그들은 날 죽이고 내 탓이라 손가락질했죠.”
은은한 기타 리프 사이로 보컬 아나스 마그레비(26)의 목소리가 울렸다. 난민 캠프에 둥그렇게 모인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그 어떤 압제에도 자유로운 영혼은 머물 곳을 만들 것이라며, 노래는 한 시리아 청년의 입을 빌어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난민으로 구성된 4인조 록밴드 ‘케베즈 다윌(Khebez Dawle)’을 소개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된 뮤지션들이 레바논에서 결성한 이 밴드는 지난 8월 아랍예술문화재단(AFAC)와 아랍문화자원(ACR)의 지원을 받아 밴드의 이름을 딴 첫 앨범을 냈다. 그러나 굶주림 탓에 레바논에서는 난민 신분으로 밴드를 계속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들은 고심 끝에 악기를 1200달러(약 142만원)에 팔아 지중해를 건넜다.
크로아티아에 도착한 이들은 현지 인권운동가들의 지원 아래 악기를 빌려 난민 캠프에서 첫 공연을 했다. 소문이 퍼지자 곳곳에서 공연 요청이 이어졌다. 이들은 유명 록밴드 ‘모과이’ 등이 공연하는 수도 자그레브의 클럽에서도 공연했다. 온라인에서도 이들의 음악을 듣거나 구매할 수 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난민 등록 신청을 한 이들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내년에는 유럽 투어공연을 할 계획이다.
밴드의 이름 ‘케베즈 다윌’은 직역하면 ‘정부의 빵’을 뜻한다. 시리아에서는 ‘의지할 곳’ 내지는 ‘잘 사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의 폭정과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됐다. 보컬 마그레비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겪은 일 덕에 시리아의 진짜 ‘빵’, 즉 튼튼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란 걸 깨달았다”면서 “우리 음악의 주제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마그레비는 이어 “밴드로서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발언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서 “클럽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뻔한 일보다 다른 문화와 국적을 지닌 이들 앞에서 음악을 통해 시리아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유럽에 울려 퍼진 ‘시리아 난민의 노래’
입력 2015-12-2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