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약학전문대학원에 응시한 서울대생이 온라인에 유서를 남긴 채 투신했다. 투신하기 전 쓴 유서를 퍼뜨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와 소방당국은 18일 오전 4시10분쯤 관악구 신림동의 한 5층 건물 옥상에서 서울대학교 3학년 A군(19)이 뛰어내렸다고 밝혔다. A군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도착 직후 후두부 출혈로 숨졌다.
A군은 투신을 하기 30분쯤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과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에 유서를 남겼다. 커뮤니티에 남긴 글은 ‘제 유서를 퍼뜨려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페이스북에 A군이 남긴 글을 본 친구가 112에 신고를 했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 사이 A군이 투신했다.
투신하기 전 A군은 메탄올을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를 통해 메탄올을 마셨다는 것을 암시했으며 A군의 방에서 빈 메탄올 병이 발견됐다. 경찰은 빈 메탄올 병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분석을 의뢰할 예정이다.
A군은 유서에서 “세상의 합리와 저의 합리는 너무나도 달랐다”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우울증 치료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위로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근거도 없는 ‘다 잘 될 거야’ 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이라고 덧붙였다. A군은 자신에게 실질적인 위안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도 남겼다.
경찰은 A군이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병원기록 등을 확인해 우울증 치료 경력 등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러나 A군의 아버지는 우울증에 대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렌터카 사고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며 경찰조사를 요청했다. A군은 지난 14일과 15일 렌터카를 빌려 대학친구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들린 주유소에서 경미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렌터카 수리비로 인한 심적인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이다. A군의 아버지는 “렌터카 회사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며 이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요청했다.
A군은 서울의 한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지난해 서울대에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입학해 매달 50만원의 장학금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입학한 뒤에는 한 학기를 선수학습 해 남들보다 빠르게 3학년 과정을 밟고 있었다. 최근 약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한 뒤 합격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의 아버지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며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다음은 A군이 남긴 유서 전문
제 유서를 퍼뜨려 주세요.
**이 형이 딱 이맘때에 떠난 것 같아서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이군요. 생명과학부 12 월 18일엔 뭔가 있나 봅니다. 저도 형을 따라가려고요.
힘들고 부끄러운 20 년이었습니다. 저를 힘들게 만든 건 이 사회고, 저를 부끄럽게 만든 건 제 자신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더 이상 힘들고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죽으면 안 된다.” 엄마도 친구도 그러더군요. 하지만 이는 저더러 빨리 죽으라는 과격한 표현에 불과합니다. 저를 힘들게 만든 게 누구입니까. 이 사회,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남은 사람들’입니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하고, 나를 괴롭힌 그들을 위해서 죽지 못하다니요.
또 죽는다는 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인 일은 아닙니다. 이걸 주제로 쓴 글이 ‘글쓰기의 기초’ 수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제 유서에 써도 괜찮은 내용일 겁니다. 제가 아는 경우에 대해서, 자살은 삶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클 때 일어납니다. 다분히 경제적인 사고의 소산입니다.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저를 너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보지는 말아 주십시오. 20년이나 세상에 꺾이지 않고 살 수 있던 건 저와 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아직 날갯짓 한 번 못 한 제가 아까워 잠실대교에서 발걸음을 돌렸고, 제가 떠나면 가슴 아파 할 동생과 친구들을 위해 옥상에서 내려온 게 수 차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힘이 듭니다. 동시에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이만 꺾일 때도 됐습니다.
무엇이 저를 이리 힘들게 했을까요
제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입니다. 저는 합리를 논리 연산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어느 행위가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것은 여러 논리에서 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합리는 저의 합리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비합리라고 재단할 수 있는가 하면 또 아닙니다. 그것들도 엄밀히 논리의 소산입니다.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비합리라 여길 수 있어도 사회에서는 그 비합리가 모범답안입니다.
저와는 너무도 다른 이 세상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년 가을에 무작정 여권 하나 들고 홀로 일본을 갔다 온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제주도에서 돌아온 다음 날의 일입니다. 즐거운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보통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날 들은 수업은 너무나도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생물학 시간에 인간과 미생물의 상호관계를 배우고 너무나 감명 받았습니다. 인간과 미생물은 정말 넓은 분야에 깊게 상호작용 하고 있었습니다. 연달아 있는 서양사 수업에서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유물론적 사관에 익숙한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8 동을 나오는 길에 든 생각이 잠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문을 하는 것은 정신적 귀족이 되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때만큼은 제가 그 정신적 귀족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
맛있는 걸 먹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목이 너무 말라 맥주를 찾았지만 필스너우르켈은 없고 기네스뿐이어서 관뒀습니다. 처갓집 양념치킨을 먹고 싶지만 먹으면 메탄올의 흡수 속도가 떨어질까 봐 먹지 못하겠네요.
혹시 제가 실패하더라도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을 겁니다. 눈을 잃게 되거든요. 오셔서 손이나 잡고 위로해 주십시오. 많이 힘들 겁니다.
제가 성공한다면 억지로라도 기뻐해 주세요. 저는 그토록 바라던 걸 이뤘고 고통에서 해방됐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부조 좀 해 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동생 **이가 닭다리 하나나 더 뜯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마지막으론 감사를 전해야겠습니다. 우울증은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로 완화됩니다. 상담치료로썬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도 있지만 ‘실질적’인 위로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거도 없는 ‘다 잘 될 거야’ 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으로 괴로워 할 때 저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실질적인 위안이 된 사람으로 둘이 기억나네요. 하나는 **누나입니다. “힘들 때 전화해, 우리 가까이 살잖아.” 이 한마디로 전 몇 개월을 버텼습니다. 전화를 한 적은 없지만,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됐습니다. 누나 정말 고마워. 미안해.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네...
다른 하나는 ***입니다. ***도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질문 하나 할 때도 매번 안부 물어봐 주고 이것저것 챙겨다 주고 고마웠습니다. 또 제가 약대 준비할 땐 교재도 빌려 주고 결과 발표 일시도 상기시켜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습니다. 약대 붙으면 맛있는 스시를 사기로 했는데, 결국엔 사지 못하게 됐네요. 고맙고 미안해... 행복하게 지내렴.
한줌 재가 된 ‘과학영재’ 대통령장학생 서울대생… 유서 전문
입력 2015-12-18 18:37 수정 2015-12-18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