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딸을 잃은 모친이 쓴 인터넷 글입니다. 당시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10년 만에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초동수사가 미흡했고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담은 기사가 최근 나왔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사건은 1인 미디어 ‘정락인닷컴’이 최근 ‘A공사 여직원 살인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락인닷컴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인희씨의 모친 유미자(58)씨는 10년 전 딸을 끔찍하게 잃은 고통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해자 이씨가 처벌받는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 법원이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씨는 ‘고작’ 징역 12년형을 받아 2017년에 풀려나게 됐다는군요. 인희씨는 다시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데 말이죠. 유씨 등 유족들은 딸과 가해자 이씨가 함께 다니던 A공사 측이 책임을 회피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악몽 같은 사건은 인희씨가 2003년 8월 A공사에 취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유부남이었던 이씨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12살 된 딸과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7개월 된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인희씨에게 교제를 요구했다는군요. 인희씨를 이를 거절하자 이씨는 인희씨를 괴롭혔습니다. 인희씨는 2005년 미니홈피에 ‘사는 게 너무나 괴로움.. 제발 나를 가만히 놔두라고.. 누가 날 좀 구해줘’라고 적으며 고통스러워했다는군요.
끔찍한 사건은 2005년 5월30일 발생했습니다. 이씨는 분당 서현동 한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인희씨를 자신의 승용차로 납치해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습니다. 이어 인희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버린 뒤 달아났습니다.
이씨는 42시간만인 6월1일 오후 6시반쯤 강원도 원주경찰서에 나타나 자수했습니다. 원주경찰서는 그날 오후 10시반쯤 인희씨 시신을 확인하고 이씨를 체포했습니다.
정락인닷컴은 A공사측 사람들이 인희씨와 이씨의 수상한 결근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고, 경찰은 인희씨의 사망 사실을 가족보다 회사측에 먼저 알린 점을 비판했습니다. 또 경찰은 인희씨와 이씨가 내연관계였다고 몰아갔으며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는데요. 이씨는 잠을 자던 인희씨를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경부압박 질식사로 결론 내렸는데, 시신의 사진을 보면 목에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온 몸에 힘에 의한 상처들이 다수 발견됐다는군요. 손톱도 다 부러졌고요.
이씨의 변호사는 2심에서 인희씨가 이씨에게 보낸 애정을 담은 메모라며 재판부에 메모를 제출했지만 이도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는군요. 유씨가 필적감정을 통해 조작을 밝혔답니다. 변호사가 내연관계라는 거짓을 꾸미기 위해 메모를 조작한 것이 확인됐는데도 법원은 변호사에 대한 사문서 위조 혐의에 대한 고소 건을 기각했습니다.
이씨는 1심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3년 감형된 징역 12년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고요. 내연관계가 아닌 점이 밝혀졌는데도 2심은 이씨의 형량을 줄여준 것입니다. 인희씨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버린 이씨는 이제 2017년이면 죄를 다 씻고 출감합니다.
유씨는 인희씨가 숨진 5월30일이 되면 서초동 대검찰청 앞이나 A공사 정문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 10주기는 A공사 정문 앞에서 추모제를 치르려다 업무방해로 벌금형(70만원)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유씨 등 인희씨 유족은 현재 3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씨에게 성폭행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A공사가 고인과 유족에게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근로복지공단은 인희씨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유씨는 딸이 숨지고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여겨 인터넷에 관련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유씨는 그 글에서 “A공사는 딸아이를 인사과장인 이씨가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전화 한 통 해주지 않았고, 장례식장에 나타나서는 유가족을 위로해주고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퇴직금 정산해 줄 테니 사망진단서를 달라’ ‘회사에서는 아무 것도 해줄게 없다’는 이해타산 적인 말만을 늘어놓아 아픈 가슴을 더욱더 멍들게 했다”면서 “회사에서 딸아이의 죽음을 경찰을 통해 먼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를 알고도 즉시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은 사측에 불이익이 가지 않게 조치를 취할 시간을 벌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적었습니다.
또 “회사의 이런 태도가 너무 괘씸해 회사를 찾아가니 사장이란 사람은 회의 중이니 기다리라고만 하고 부하 직원들은 무슨 일이라도 날까 사장을 감싸고 돌았다”면서 “사장에게 ‘내 딸 살려내라’고 하자 사장이란 자는 둘째 딸을 가리키며 ‘저기 딸 또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유가족이 A공사를 고소해서 화가 났다’며 있지도 않은 일로 오히려 우리를 추궁했고, ‘직원들이 경찰서로 조사 받으러 불려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다’ ‘장례식장에는 험한 일 당할까봐 가려다가 말았다’ 등의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화가 난 둘째 딸이 진열된 상패를 흐트려 놓으니 대통령상 탄 것을 건드렸다며 화를 냈고 경찰을 불러 사진과 동영상들을 찍었다고도 했습니다. 유씨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평소 사람을 위한 경영을 자신의 철학이라고 내걸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딸아이의 한을 풀어 주는데 어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여러분들께서 제 딸의 억울한 사연을 알아주시고 죽음의 진상을 가리는데 힘 돼주길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아픔을 함께 하며 “열불이 나서 말조차 안 나오네요” “기억하겠습니다. 응원할게요” “법은 왜 이러나. 경찰은 왜 이러나”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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