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 지 30년 만에 시집 ‘죽편(竹篇)’을 낸 서정춘(74) 시인의 시화전 ‘봄, 파르티잔’이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유카리갤러리에서 12월 15일부터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시와 그림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말연시를 맞아 화가·시인·사진작가 등 30여명이 시인의 시에 어울리는 작품을 내놓았다. 예술가들이 그의 주옥같은 시에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이제하, 마광수, 박불똥, 장경호, 이홍원, 최울가, 임창열, 김구, 이영미, 김영미, 이성우, 고은아, 안동해, 성륜, 박명선, 김기호, 김진하, 박윤호, 조명환, 정영신, 서길헌, 김서경, 이지녀, 이선현, 강미숙, 주성준, 주재환, 전강호, 유명선 등 화가, 조각가, 사진가, 소설가 등 29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소설가 마광수도 멋진 그림을 그렸다.
“시들아/ 그림들아/ 여지껏 따로 놀았겠다./ 오늘은 주례사도 없이/ 너희들의 합동결혼식날.”(시와 그림, 결혼하다)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여고 담벼락 옆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신문배달, 서점 점원, 군청 사환으로 순천매산중고등학교(야간부)를 졸업하고 대학을 실패한 뒤 공사판 잡부로, 철공소 수련공, 떠돌이 마늘 장사와 남대문시장 생선가게 배달꾼으로 일했다. 춥고 배고픈 시절, 지원입대를 하고 만기 제대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박용래문학상, 백자문학상을 수상했다.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시 ‘봄, 파르티잔’ 전문) 피비린내 나는 지리산 능선의 빨치산 얘기를 시로 옮겼다. ‘파르티잔’이란 러시아어로 ‘빨치산’을 우리 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시인은 6·25전쟁의 아픈 기억을 ‘파르티잔’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롭게 탄생시켰다. 빨치산들에게도 봄을 그려준 것이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시 ‘죽편 1’ 전문) 푸른 기차를 타고 백년이나 걸려 가는 길은 우리의 인생길이기도 하다.
2014년 ‘백자예술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인 허영자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은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는 천생의 예술가, 천품의 시인이 더러 있다. 서정춘 시인은 흔치않은 천성의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 분의 시에서는 실로 예리한 감각, 민감한 감성, 깊은 통찰력, 전광석화 같은 직관력, 따뜻하고 순수한 심안, 그리고 착한 삶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시 ‘30년 전, 1959년 겨울’ 전문) 춥고 배고픈 시절이지만 고향의 풍경이 훈훈하다.
“나여/ 푸르러 맑은 날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죽기에도 좋은 날/ 이런 날은 산불같은/ 꽃상여 좀 타봤으면,”(시 ‘봄날’ 전문) 그는 ‘봄날은 간다’ ‘부용산’ 등을 즐겨 부른다. 한량이자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시집 ‘봄, 파르티잔’에서 시인은 “不是一番/寒徹骨/爭得梅花/撲鼻香(한번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지 않고는 어찌 진한 매화의 향기를 얻으리)”라고 썼다. 당나라 고승 왕벽의 이 시를 칸딘스키가 추상화론을 쓰면서 인용하기도 했다. 한 것이다. 뼈가 시린 고통으로 구상을 거치지 않고 추상화를 그린 것에 대한 충고다. 이 또한 내 시 정신의 화두다”(글·임윤식)
그런 그의 시에 작가들이 맞춤한 작품을 내놓았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02-733-7807).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죽편’의 시인 서정춘 유카리갤러리 12월28일까지 시화전 ‘시와 그림의 행복한 만남’ 30여 작가 출품
입력 2015-12-18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