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공화당 히스패닉, 루비오와 크루즈

입력 2015-12-17 17:13 수정 2015-12-17 17:39
마르코 루비오 후보(사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에서 발군의 토론 실력을 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은 재선에 나섰던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 중 72%를 얻어 27%에 그친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를 간단히 이겼다. (UPI/연합뉴스)
테드 크루즈 후보(사진)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도널드 트럼프를 제치는 등 선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쿠바계 미국인 사회에서 자라난 공화당 마르코 루비오 후보는 두 문화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쿠바식 감자튀김인 프리타스와 햄버거를 즐기고, 스페인어와 영어를 함께 구사한다. 기자회견에서도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할 정도다.

또 하나의 히스패닉계 공화당 후보, 테드 크루즈는 좀 다르다. 카우보이 부츠를 즐겨 신고 커다란 벨트 버클을 차는, 엄격한 침례교인이다. 휴스턴 출신인 그는 백인 기독교도가 주류인 학교를 다녔으며, 스페인어보다는 ‘스펭글리시(히스패닉이 구사하는 영어)’를 쓴다. 출신지인 텍사스주에서 히스패닉이란 대개 멕시코계지만, 그는 루비오와 같은 쿠바계다.

◆ 트럼프 누를 유력 주자, 히스패닉 2인방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두 후보를 비교하며 히스패닉인 루비오와 크루즈가 미국 주요정당의 핵심 대선주자가 됐다는 건 미국 정치가 변환기를 맞았음을 상징한다고 평했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보수적 히스패닉 계층으로 등장한 ‘유카 프라이머리(The Yuca Primary)'를 대표한다. 쿠바의 인기 식재료에서 이름을 따온 이 단어는 도시에 사는 쿠바계 미국인을 일컫는다.

15일(현지시간) 대선토론회에서 드러났듯 둘은 이민 등의 이슈를 둘러싸고 점점 서로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둘은 현재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체할 가장 유력한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올해 두 대선 주자가 보여준 행보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꿈꿔오던 것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선거에서 커져가는 걸 고려하면 실망스런 결과다. 2012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표심을 잡지 못해 패배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공화당은 당시 다짐했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민자 사회에 트럼프가 계속해서 폭언을 쏟아낸 영향이 크다. 이민에 대해 갈수록 강경한 태도와 정책이 나오면서,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 있어 강점을 가졌던 크루즈와 루비오의 향후 전망도 복잡해졌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둘의 행보에 회의적이다. 워싱턴DC에 위치한 보수단체 ‘보수가치에 대한 라틴파트너십’의 알폰소 아길라 전무이사는 “이민 정책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히스패닉 표를 얻는 것도 힘들어 질 것”이라면서 “히스패닉들은 그저 후보가 히스패닉이라고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NYT와의 인터뷰에서 쏘아붙였다. 특히 크루즈를 겨냥해서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감수성에 좀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 주 두 자유주의 성향 히스패닉 단체는 라디오 및 온라인 광고를 통해 루비오와 크루즈를 트럼프에 연관시키며 이들이 모두 반(反)히스패닉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히스패닉계로부터 지지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다. 정치평론가들에 따르면 백악관 입성을 위해서는 히스패닉 표 중 40% 정도를 획득해야한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미트 롬니는 히스패닉 표 가운데 27%를 얻는 데 그쳤다.

미국에는 다양한 히스패닉이 살고 있지만, 이중 대부분은 민주당에 표를 던진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이자 공화당원이며, 쿠바계 미국인이고, 나이도 마흔넷으로 같은 두 후보의 모습은 미국 히스패닉 사회에도 다양한 정치성향이 있음을 드러낸다. 두 후보는 자신들이 히스패닉이란 점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텍사스주에 사는 멕시코계 미국인’ 같은, 기존의 히스패닉 전형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일부에서는 두 후보가 아이오와나 뉴햄프셔주처럼 히스패닉이 적게 사는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전된 점으로 꼽기도 한다. 클린턴 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소속 앙리 시스네로스 전 샌안토니오 시장은 “이제 새로운 시기를 맞았다”면서 “사람들이 이념을 인종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두 후보의 유사점은 놀랄 정도로 많다. 둘 다 쿠바계 이주민의 첫 자손세대이고, 생년월일도 5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둘 모두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주해온 반 카스트로 성향의 가문 출신이다. 이들은 낙태, 총기, 최저임금,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차이도 깊다. 출신 지역과 성장 환경, 기반 공동체 등에서 대조 혹은 대립된다. 이민 정책과 히스패닉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둘은 크게 갈린다. 이는 히스패닉과 비(非)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심에 결정적 차이를 낳을 요소다.

◆ ‘쿠바인 정체성’ 간직하고 자란 루비오

루비오는 어린 시절을 히스패닉과 백인 문화가 공존하는 1970~1980년대 마이애미에서 보냈다. 이 때문에 쿠바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마이애미는 쿠바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쿠바계 인구가 사는 곳이다. 남미 제 2의 수도라 불릴 정도다. 마이애미에 사는 쿠바인들은 대개 공화당 지지자들이고 반 카스트로 성향이다. 루비오와 크루즈 모두 쿠바에 있어서는 적대적인 입장이다. 독재는 그리 큰 이유가 못된다.

루비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쿠바에서 젊은 시절 결혼해 1956년 마이애미로 건너왔다. 대개 이주민들이 그렇듯 더 나은 직장과 미래를 위해, 아이들이 더 나은 꿈을 꾸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루비오는 2012년에 낸 자서전 ‘미국의 아들(An American Son)’에서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키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고 적었다. 마이애미에 머물게 되면서 아버지는 술집 종업원으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했다.

루비오에게 있어 미국에 동화되는 일이란 자신의 미국적인 면과 쿠바적인 면을 같은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루비오는 스페인식 크리스마스이브인 노체 부에나를 쿠바 음식 레션 아사도로 축하하는 한편, 미국식 마리네이드에 담근 돼지요리로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념한다. 새해 첫날 미식축구팀 마이애미 돌핀스의 경기를 보는가 하면, 스페인계 방송사 유니비전에서 스페인어를 쓰고, 폭스 방송에서는 영어를 쓴다. 랩을 중얼대고 쿠바 음악에 춤추는 식이다.

루비오는 라스베가스에 살았던 6년 동안 할아버지에게서 쿠바 문화를 배웠다. 할아버지는 루비오에게 쿠바식 에스프레소인 카페시토스를 만들어주고, 쿠바의 역사를 가르치고, 스페인어로 된 신문을 큰 소리로 읽게 했다. 루비오는 이를 “당신의 모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한때 루비오 옆에서 일했던 공화당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 지구당 의장은 루비오를 일컬어 “100% 미국인이지만, 자신의 배경인 쿠바 문화에 대해서도 매우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루비오는 마이애미 서부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히스패닉 이민자들과 이웃해 살기도 했다. 최근 한 유세에서 루비오는 스페인어로 “Vamos a llevar una Caja China a la Casa Blanca(쿠바식 돼지구이 조리기구를 워싱턴DC로 가져오겠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 옆에는 콜롬비아계 미국인인 루비오의 아내 자넷도 서 있었다.

이 같은 면 덕에 루비오는 이민정책에 대해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자비에르 발로마레즈 미국 히스패닉 상공회의소 의장은 “루비오는 이민의 역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고, 또 그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다”라면서 “루비오는 이민을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민법이 하도 오락가락 바뀌어왔기 때문에, 마이애미 주민들 대부분은 법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라고 있다. 루비오는 이 같은 열망을 알았기에 2013년 민주당에서 발의한 이민법 개혁안에 일조했다. 기존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이었다. 이로 인해 루비오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공화당원들과 티파티 지지자들로부터 만만찮은 반발이 있은 뒤, 루비오는 재빨리 자세를 바꿔 해당 법안과 거리를 두고 국경 강화에 더 우선을 두는 쪽으로 선회했다. 때문에 루비오의 행동이 이민에 대한 공화당의 기존 태도를 순화시키려는 것이라 기대했던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또한 루비오가 트럼프로부터 히스패닉을 더 적극적으로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 ‘나 완전 미국 사람입니다’ 크루즈

루비오와 달리 크루즈는 히스패닉 유권자들로부터 비교적 별다른 지지를 받지 않고도 상원의원 배지를 달았다. 때문에 크루즈는 히스패닉 유권자를 달래는 게 더 힘들다. 전문가들은 크루즈가 이민에 대한 입장, 그리고 스스로의 히스패닉 배경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탓에 민주·공화당 지지자를 막론한 히스패닉 유권자로부터 표를 잃었다고 평했다. 크루즈 지지자들은 강력한 단속을 통해 불법 이민자들을 쫓아내고, 일정기간 이민 규제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속지주의를 규정한 수정헌법 14조를 개정해 불법 이민자 자녀들이 시민권을 얻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크루즈는 히스패닉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서조차 비판받아왔다. 크루즈를 뽑지 않겠다고 밝힌 히스패닉 공화당원이자 텍사스주 언론전문가 리오넬 소사는 “텍사스주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크루즈가 자신의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히스패닉이라고 충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하면서, “히스패닉 공화당 지지자들은 크루즈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치, 문제를 대변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크루즈는 1970~1980년대 휴스턴에서 자랐다. 살았던 마을과 다닌 학교에서는 쿠바계 미국인을 찾기 힘들었다. 스스로를 ‘괴짜 소년’이었다고 밝힌 크루즈는 십대 시절 라파엘 에드워드 크루즈라는 스페인식 이름을 지금의 ‘테드’ 크루즈로 바꿨다.

크루즈는 올해 출간된 자신의 자서전 ‘진실의 시간’에서 이름을 라파엘에서 라파엘리토로, 또 펠리토로 바꿨다고 썼다. 크루즈는 “그 이름은 프리토스, 치토스, 도리토스 등 시중에 파는 어떤 옥수수칩과도 운율이 맞았다”면서 “그래서 다른 애들이 자꾸 놀려대곤 했다”며 이름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의 이름 ‘테드’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어머니가 지어줬다. 아버지 라파엘은 쿠바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수하로부터 체포, 폭행을 당한 뒤 1957년 쿠바에서 텍사스주로 건너왔다. 크루즈는 자서전에서 “내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이름을 바꾼 걸 당신과 그 유산을 거부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2년 가까이 아버지는 그를 ‘테드’라고 부르길 거부했다. 지금은 아들의 스페인어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화는 크루즈가 어떻게 스스로를 본래의 히스패닉 정체성으로부터 분리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루비오와 달리 크루즈는 쿠바와의 연결지점이 거의 없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친지 몇몇이 전부다. 아버지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뒤 기독교 문화는 크루즈의 가정을 지배하게 됐다. 크루즈와 프리스턴대, 하버드 법대에서 룸메이트로 지낸 데이비드 K 팬턴 팬턴캐피탈홀딩 회장은 “크루즈는 누굴 만나든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닌, 상대가 현재 누구인지에 집중했다”고 회상했다.

정치판에 뛰어든 뒤, 크루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민 문제보다는 미국이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미국으로 건너올 당시 속옷에 숨긴 100달러 외에 가진 게 없었던 크루즈의 아버지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에 다니기 위해 접시닦이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크루즈는 “미국이 아버지를 구한 셈”이라고 자서전에 적었다.

꽤 가슴시린 사연이지만, 많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그리 인상 깊지 않다고 평가한다. 크루즈가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이민자 사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호세 로드리게즈 텍사스주 민주당 상원의원은 “크루즈는 자신이 텍사스주 출신 히스패닉계 상원의원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데 대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가 멕시코계 미국인 사회와 거리를 두듯, 멕시코계 미국인 사회도 그와 별 일치점을 찾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