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보다 법이 더 싫어요” 악소리 나는 헬조선… 페북지기 초이스

입력 2015-12-17 09:54
여러분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행복하셔야 합니다. 우리 ‘삶의 질’은 세계 188개국 중 무려 17위이기 때문입니다. 수치만보면 우리의 삶의 질은 일본이나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다른 웬만한 선진국들보다 높습니다. 헬조선이라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법시스템(judicial system)에 대한 신뢰도는 세계 최악 수준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법원의 판결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17일 페북지기 초이스입니다.

우선 MBC PD수첩이 지난 15일 방송한 ‘음주운전 피해자의 절규’를 보시죠.

지난 6월19일 전남 여수에서 순천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화물차가 승용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바다를 보러 가족여행을 떠났던 김경동씨는 소주 한 병을 마셨다는 운전기사가 화물차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는 바람에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화물차 기사는 혈중알코올농도 0.163% 상태였습니다. 이 화물차 기사는 PD수첩에서 “보통 (술을 먹고) 한숨 자면 깨긴 하는데 그때는 피로가 누적돼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도 술을 자주 마셨나 봅니다. 1심 법원은 화물차 기사에게 징역4년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사람 두 명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는데 (가해자는 징역) 4년”이라면서 “가해자 벌 받는 거 보고 죽더라도 그 다음에 죽어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시청자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PD수첩은 또 다른 음주운전 피해자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이재영씨는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이상으로 중앙 분리대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뒤 차와의 사고를 방지하려고 삼각대를 세우고 돌아오던 이씨는 음주 졸음운전을 한 가해차량이 받쳐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는데요.

서른살 외동아들로 취업 준비를 하던 이씨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가해자가 1심에서 고작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법원에만 반성문을 제출한 뒤 재판 하루 전 3000만원의 공탁금을 걸었습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고 공탁금을 걸었다는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우리 네티즌들은 발끈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데도 어떻게 형량이 이렇게 낮냐는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누가 봐도 살인인데 고작 4년이라니” “서른살 청년이 엉뚱하게 다리를 잃었는데도 집행유예? 그게 상식인가요?” “술 마시고 대형 흉기를 휘두른 것과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형이 이렇게 가벼운가요?”라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 다시 유엔이 14일 발표한 삶의 질 순위로 돌아오시죠.

유엔개발계획(UNDP)은 2015 인간개발 보고서에서 국가별 기대수명, 교육수준, 1인당 실질국민소득 등을 근거로 188개국의 2014년도 인간개발지수(HDI) 순위를 매겼는데요. 한국은 무려 17위입니다. HDI 지수가 0.898였습니다. 노르웨이(0.944)가 1위고 호주,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순입니다. 캬, 이 정도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살기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회구성원이 웰빙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묻는 조사결과를 보면 생각이 싹 달라지실 겁니다. 그 중에서도 ‘정부에 대한 인식’ 항목 중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Confidence in judicial system)’를 묻는 부분을 보면 한국은 19%에 불과합니다. 답변자 중 19%만이 이 질문에 예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삶의 질 1위 노르웨이는 83%인데 말이죠.

이 수치는 이 항목을 표시한 전세계 135개국 중 뒤에서 3번째입니다. 최악은 파라과이로 9%이고 우크라이나가 12%, 페루가 18%입니다. 바로 그 위가 한국과 몰도바, 파라과이로 19%입니다. 심지어 삶의 질 꼴찌인 니제르마저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59%에 이릅니다.


자, 이쯤 되면 한국인들은 우리 사법시스템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법치국가가 맞나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이는 분명 국민 법감정과 실제 형량과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요.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다리를 잘라야 했던 이씨는 방송에서 아버지에게 한탄합니다. “아버지, 저는요. 가해자보다 법이 더 싫어요”라고요. 가슴이 답답합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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