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협정'이 단어 하나 때문에 결렬 위기를 겪었던 것으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물밑 사전작업과 프란치스코 교황·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 노력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협정문 채택이 임박한 12일 이른 오후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협상팀은 협정문 최종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참가국들의 재정적 의무를 설명하는 조항에서 “부자 나라들은 온실가스 오염을 줄이기 위한 범경제적 목표를 세울 것이다”(Wealthier countries shall set economy-wide targets for cutting their greenhouse gas pollution)라는 조항을 발견했다.
법적 강제성을 가진 ‘shall'이 아니라 강제성이 없는 완곡한 표현인 ’should'로 된 초안을 제출했던 케리 장관은 곧바로 총회 의장인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국 의회에서 법적 강제성을 가진 문구가 들어간 협정문을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비위스 장관에게 “단어를 바꾸지 않는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은 이 협정을 지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최후통첩성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상황 파악에 나선 미국과 프랑스의 담당 관료들은 should에서 shall로 단어가 바뀐 것은 협상을 망치려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작업이 아니라 우연한 실수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들은 shall 해프닝을 인쇄상 오류로 취급하고 개최국 리더의 재량으로 단어를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협정문은 같은 날 오후 6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참석자들의 환호 속에서 무사히 통과됐으나, 의사봉을 두들기는 절차를 깜박한 파비위스 장관이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나무 의사봉을 두들긴 후에야 정식으로 선포될 수 있었다.
또 기후변화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섬나라와 가난한 국가들의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 요구도 쟁점이 될 뻔했다. 미국은 이들에 대한 보조금을 현재의 두 배인 연간 8억 달러(약 9471억원) 수준으로 올려주기로 해 겨우 달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shall 단어 논란을 계기로 터키와 니카라과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밀어 파행 분위기가 퍼지는 와중에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협정 타결을 간곡히 요청한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숨은 해결사라고 BBC 방송은 전했다. 반기문 총장도 오는 26일 니카라과를 방문해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주겠다고 약속해 니카라과의 불만을 달랜 것으로 알려졌다고 BBC는 덧붙였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Should냐 Shall이냐"…파리협정, 단어 하나에 좌초 위기, 반기문 등 역할
입력 2015-12-14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