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청년기고’ 코너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코너입니다. 기고는 수정 없이 게재하며 국민일보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년기본법 제정, 일념통암(一念通巖)으로!
기고자 : 박정환·새누리당 청년혁신위원회 부위원장(새누리당 청년혁신위원회 :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회 내 청년위원회로서 정책과 정치혁신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신설기구)
최근 들어 SNS 상에서 청년사회를 대변하는 충격적인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헬조선’. 또 3포(연애, 결혼, 출산), 5포(내집 마련, 인간관계), 7포(꿈과 희망)도 모자라 다른 것도 다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까지. 이런 절망적 단어들이 청년들에 대한 규정으로 통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체기에 이르러 그동안 쌓여 온 사회 적폐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적폐해소에 대한 목소리가 한두 해 나온 것이 아니다. 국회가 열렸을 때 시행되는 대정부질문에서는 항상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국가대계를 논하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까닭은 정치적인 선전도구로서 이용되는 수혜성 정책이라는 기성세대의 인식과 청년들의 자조 섞인 체념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A시에서는 ‘청년활동수당제’라는 명목으로 19~29세 청년 취업준비생 3천여 명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해 위기에 처했다. A시의 시장은 정부와 상관없이 수당제를 실시하겠다고 반박했다. 이 정치적 공방 속 ‘청년’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쟁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무엇보다 청년정책이 정부와 지자체 간 상이하거나 각 소관 부처에 분산돼 통합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15년 기준으로 약 14조에 달하는 청년정책 예산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기 보다는 명목 상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심지어 청년층에 속하는 나조차 법과 정책의 근간이 되는 청년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해 우리가 누군지, 어떻게 목표를 가지고 한 목소리를 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소비자도, 공급자도 어떤 수요와 어떤 공급이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청년정책의 현 주소다.
예를 들어 보자. 19대 국회에는 ‘청년발전기본법안’ 세 건이 제정돼 계류 중이다. B 의원안은 19~39세, C 의원안은 19~34세, D 의원안은 19~40세 이하로 청년의 기준이 상이하다. 이는 정부도, 입법부도 청년에 대한 일관된 인식이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얘기다. 청년의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이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래에는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최소의 지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 낼 것인지 아직까지 고민이 구체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미취업청년에 대하여 ‘Workforce Investment Act of 1998’라는 연방법에 의해 취업기회의 제공 및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OECD 평균과 유사하게 청년(youth)의 범위를 14~21세로 정의하여 우리의 ‘청소년 기본법’ 상 청소년(9~24세)과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타 선진국들도 거의 비슷한 상황으로 참고할만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또 우리의 ‘청년발전기본법안(이하 청년기본법)’과 유사한 형태의 청년발전지원법률을 제정한 국가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케냐 등 제3세계 국가들로 과거 우리나라가 경험했던 성장기처럼 개발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주체가 청년이라는 점에서 그 목적이 다르다. 결국 남의 것을 참고하기 보다는 철저히 우리 식의 청년에 대한 개념과 지원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서는 청년(靑年)을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 지칭한다. 과거 1900년대에는 시대를 이끄는 강인하고 역동적인 젊은이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포기, 절망, 미숙함으로 점철되어 사회에 동력을 전달할 군불의 온도가 식어가고 있다. 차디찬 아랫목에서 덜덜 떨며 긴 겨울을 맞이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혹자는 청년정책의 해결을 위해선 줄탁동시(?啄同時·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너무 강한 힘으로 알을 깨버리면 그 알에서 나온 병아리는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 내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도움을 청했을 때 도와주는 것이 줄탁동시다.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뜻을 함께 모아 사회에 요청했을 때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끌어 주는 역할을 정부에서 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우선 청년의 범위와 개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이후 정치적으로 통일된 청년들의 상향식(bottom-up) 정책제안이 구속력을 갖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청년기본법’을 지원에 대한 근거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책허브로 활용해 타법의 각 조항들을 받쳐 주는 버팀목으로 인식하는 것이 앞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극심한 정체기에 들어서 있다.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고속성장의 영광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손수 만들어야 하는 앞날만이 남았다. 정책도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흑백의 논리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를 잇는 ‘효율적 정책’, 즉 국민들이 기다리는 ‘새정치’의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 근간을 만드는 청년기본법은 오직 청년들의 일념통암(一念通巖·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으로부터 시작됨을 함께 인식해야 할 때다.
‘청년뉴스(20대뉴스·20대기고)’의 자매 코너인 ‘청년기고’에서 기고문을 받습니다. 대상은 10대에서 30대라면 누구나 가능하며, 기고문은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에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청년기고] “청년기본법, 상향식 정책제안이 구속력 갖도록”
입력 2015-12-11 14:58 수정 2016-03-08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