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는 2011년 신임 경찰이 됐습니다.
강원도 정선군청에 근무하던 윤씨의 여동생은 스물세 살이던 2006년 9월7일 출근길에 강호순에게 납치돼 목숨을 잃었습니다. 윤씨 여동생의 시신은 동강변 절벽 아래서 발견됐다는군요.
동생을 찾아 헤매던 윤씨는 동생의 사건 파일을 열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경찰이 되려고 노력했다는군요.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윤씨는 경찰이 된 뒤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놀랄만한 말을 했는데요.
“강호순을 만나게 된다면 딱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돼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고…”
파리 테러로 아내 엘렌을 잃은 ‘프랑스 블루’의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리도 윤씨와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글은 테러범들이 원하는 증오를 주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들을 괴롭히겠다는 내용입니다.
17개월된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엘렌은 헤어메이트업 아티스트였다고 합니다.
레리의 글을 한 번 보시죠.
“당신들에게 증오를 주지 않겠다.
지난 금요일 밤, 당신들은 너무나 특별했던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내 인생의 사랑, 그리고 내 아들의 엄마였던 사람을. 하지만 당신들은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죽은 영혼을 가진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내 분노와 증오를 얻고 싶겠지만, 증오로 답하는 건 당신들과 똑같은 무지한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 내 아내의 몸에 박힌 총알 하나하나는 당신들이 섬기는 그 신의 심장에 박혀 괴롭힐 것이다. 당신들은 내가 겁에 질려 내 이웃과 조국을 불신하고 내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길 바랄 테지만 당신들은 틀렸다.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살아가겠다. 며칠 밤을 애타게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드디어 오늘 아내의 모습을 봤다. 아내는 지난 금요일 외출을 나갈 때처럼, 12년 전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당연히 나는 죽은 아내를 보며 비통하고 충격에 빠졌다. 당신들이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두자.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날마다 나와 내 아들과 함께할 것이고, 당신들이 절대로 가지 못할 천국에서 우리는 함께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난 지금 막 낮잠에서 깬 17개월 된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당신들에게 신경 쓸 시간 따위는 없다. 내 아들은 매일 맛있는 밥을 먹을 것이고, 우리는 매일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며, 이 작은 아이는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아감으로써 당신들과 직면할 것이다. 당신들은 내 아들의 증오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동생이 연쇄살인마에게 피살됐는데도 증오를 키우는 대신 연쇄살인마의 가족을 지키는 경찰이 된 윤씨와, 사랑하는 아내를 끔찍한 테러로 잃었는데도 증오하기는커녕 이전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노라 선언한 레리. 또 다른 갈등을 낳는 증오심과 복수심을 끊다니 대단합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