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 빨갱이냐?” 시 한 편에 난리난 뻘쭘 해프닝

입력 2015-12-09 00:01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멈춰, 봅시다’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듯한 제목의 시를 적은 대자보가 경희대에 내걸려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8일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페이지 ‘멈춰, 봅시다’에 오른 사진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멈춰, 봅시다’는 대학생들이 학교 학내 게시판에 써 붙인 시를 소개하는 페이지다.

문제가 된 시는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김일성 만세.’ 다소 의아하지만 내용을 보면 글쓴이의 의도가 짐작된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찬찬히 뜯어보면 김일성을 찬양하자는 내용이 아니다. 발언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외침이다. 최근 권력에 의한 언론 압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더욱 주목을 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현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터넷에는 작성자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친 것 아닌가” “이게 ‘빨갱이’가 아니고 뭔가”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등 반응이 들끓었다.

학교 측에 전화를 걸어 항의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측은 해당 대자보를 수거하고 경위문을 게재했다.

학교 측은 “김일성 만세 시에 대해 외부에서 우려스런 문의가 있어 게시자를 찾으려 했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일단 게시물을 수거했다”며 “이후 게시자가 행정실을 방문해 게시물을 돌려주고 경위를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이는 학생이 직접 지은 시가 아니었다. 1960년 발표된 고(故) 김수영 시인의 유작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이 시는 언론과 정치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실상 자유를 억압하는 당대 세태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사실이 다시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다소 민망해하는 분위기다. “공부 좀 하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