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 박사가 말하는, “우울증 그리고 자살”

입력 2015-12-08 17:03

홍혜걸의 의학 채널 ‘비온뒤’에 ‘우울증 그리고 자살’ 이라는 주제의 건강정보가 올라왔다.

홍혜걸 박사는 가을이 되어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생리적으로 우울감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자살은 대개 봄에 많지만 뿌리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우울증이다. 실제 자살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5분에 한 명씩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며 34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생명을 잃고 있다. 자살 사망자만 해마다 1만 5천여 명이나 된다.

홍혜걸 박사는 자살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는데 주의 깊게 볼만하다.

첫째, 자살이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 여러 가지 자살 방법 중 가장 잔인한 것은 무엇일까. 질문의 목적은 자살 방법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나(홍혜걸)는 제초제 중독이라 믿는다. 지금은 다행히도 판매 금지됐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농가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던 제초제가 그라목손이다. 그라목손은 안타깝게도 해독제가 없다. 혈액투석을 해도, 위세척을 해도 일정량 이상 마시면 결국 죽게 된다. 대개 폐섬유증을 유발해 폐가 굳어가면서 숨을 못 쉬고 죽는다.

문제는 반 컵 정도 소량만 마시면 며칠 견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놓길 원한다. 한 맺힌 사연을 들어주길 원하고 가족이나 연인이 공감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농약을 마신다. 응급실로 실려가고 가족과 연인이 달려온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듣고 서로 눈물 흘리며 포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폐가 굳어질 때까지 의식도 있고 말도 할 수 있고 왔다 갔다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며칠 후 반드시 죽는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의사에게도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자살의 뿌리엔 오히려 강렬한 생에 대한 욕구가 있다. 어떤 경우든 자살을 미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자살은 성냥불과 기름을 모두 살펴야 한다. 성냥불은 사별과 실연, 부도 등 개인이 겪는 불행한 일들을 말한다. 여기엔 자살을 부추기는 환경도 포함된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모두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깔려있는 기름도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이 있으면 사소한 충격에도 쉽게 스스로 생명을 끊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긴장하는 질병도 바로 우울증이다. 정신분열병이 아니다. 정신분열병은 환각과 망상 등 말 그대로 미치는 것이지만 치료가 비교적 잘 된다. 그러나 우울증은 의사가 조금만 방심해도 목을 매달고 만다.

우울증은 쉽게 말해 ‘이유 없이 슬픈’ 증세를 보이는 병이다. 매사에 무기력하다. 이 병은 후천적 환경이나 생활습관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경제나 교육 수준과도 무관하다. 아무리 부유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우울증 환자가 될 수 있다.

현대 의학은 우울증을 뇌의 질환으로 본다. 뇌 속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떨어지면 잘 생긴다. 유물론적인 해석이지만 세로토닌이 우리의 무드를 관장한다. 노화나 유전자, 환경 등 다양한 요인으로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누구나 우울해진다. 인내심이 약하고 마음의 수양이 안되어서 우울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우울증은 프로작이나 졸로푸트 등 세로토닌 농도를 올려주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울증을 절대로 ‘마음의 감기’쯤으로 경시해선 안 된다. 내버려 두면 정말 자살한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엔 분명 징후가 있다. 주위와 접촉을 끊고 우울해지며 말수나 식욕이 줄어든 경우, 주위 사람에게 자살 고백을 하거나 갑자기 여행을 떠나거나 성직자를 찾는 경우다.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나눠 주거나 사후세계에 대한 서적을 탐닉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살 징후다. 급기야 죽고 싶다는 고백을 하면 의학적으로 응급상황이다. 가까운 정신과를 서둘러 찾도록 해야 한다. 주위에 우울증 환자의 전형적인 표정, 그러니까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슬픈 사람’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콘텐츠팀 이세연 lovo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