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기로에 섰다. 판정시비를 없애기 위해 전자호구 시스템을 채택한 이후 득점을 노린 잔기술이 등장하면서 화끈한 타격전이 사라진다. 재미가 반감하면서 이대로 두면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 태권도가 가라데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015 세계태권도연맹(WTF)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이틀째 경기가 펼쳐진 7일(한국시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살라 데 아르마스 체육관. 선수들은 앞다리를 들고 상대를 기다리는(속칭 커트 발) 지루한 경기가 속출했다. 태권도가 너무 재미없다는 지적이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전자호구 시스템은 몸통과 머리 등 특정부위에 발에 부착된 센서가 닿으면 자동 채점이 되는 방식이어서 강한 타격보다 빠르게 접촉하는 발기술이 개발됐다. 태권도 경기가 ‘발 펜싱’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박진감은 떨어졌지만 전자호구 시스템은 차등점수제와 함께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격투기로서의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태권도 본래의 강한 타격을 득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계속 지적돼 왔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WTF는 일정 강도 이상이 돼야 득점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전자호구를 전격적으로 들고 나왔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무득점으로 연장전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고, 선취득점하면 거의 승리했다. 특정 부위에 접촉만 하면 득점되는 기존 전자호구에 익숙해진 탓인지 강한 발차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대회를 관전한 박계희 실업태권도연맹 부회장은 “태권도 본래의 화끈한 발차기가 사라지고 요령으로 득점하려는 기술이 계속되는 한 올림픽에서 태권도의 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판정의 공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격투기 태권도의 화끈함이 병행돼야 올림픽에서 가라데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연맹은 화끈한 경기를 유도하는 방안으로 올해부터 몸통 돌려차기에 2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전자호구 채택이전 태권도의 득점유형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득점의 73% 가량이 몸통 돌려차기였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 결과 3점이 주어지지만 득점이 어려운 머리공격 대신 몸통 공격에 주력하면서 경기의 박진감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태권도 선수라면 누구나 특기로 삼고 있는 일명 나래차기(양발 연속 공격)가 성공하면 단 번에 8점까지 얻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업연맹은 WTF에 이같은 사례를 보고하고 향후 채점 방식 변경을 위한 참고자료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대한태권도협회도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 향상을 위해 내년부터 초중등 대회의 몸통 돌려차기에 2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WTF도 이날 대표자 회의를 열고 내년 올림픽에 일명 ‘커트 발’에 경고를 줘 화끈한 타격전을 유도하기로 했다.
한편 한국은 이날 남자 68㎏급 이대훈과 80㎏초과급 차동민(이상 한국가스공사)이 각각 내년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대훈은 결승에서 홈코트의 사울 구티에레스를 연장전 끝에 8대 7로 누르고 우승했다. 올림픽 랭킹 5위 차동민은 1회전에서 안토니 오바메(가봉)에 판정패했지만 1, 2위에 오른 우즈베키스탄 선수 중 2위 선수가 탈락하는 행운에 힘입어 6위에 턱걸이, 티켓을 따냈다. 한국은 이로써 내년 올림픽에 전날 3명을 포함, 역대 최다인 5명이 출전하게 됐다.
멕시코시티=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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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07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