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태권도 왕중왕전인 2015 세계태권도연맹(WTF)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는 갑자기 바뀐 전자호구 때문에 혼란을 빚었다.
6일(한국시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의 살라 데 아르마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첫날. 전광판에 표시된 점수는 선수들이 아무리 타격을 가해도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1대 0, 2대 1 같은 점수가 속출했다. 남자 58㎏급의 김태훈(동아대)과 모하메드 케트비(벨기에)의 1회전은 두 선수가 연장전을 포함해 7분간 치열한 발길질을 주고받았음에도 단 1점도 올라가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는 2012 런던올림픽과 2015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용한 ‘대도’ 전자호구가 사용됐다. 런던올림픽 당시 머리공격에 3점 등이 주어지는 다득점제가 처음 채택되면서 점수가 10점대에서 승부가 갈렸다.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점수가 올라간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번 대회에는 일정한 강도 이상의 타격이 가해져야만 득점이 되는 ‘대도’의 다른 전자호구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5일 열린 대표자회의에서 느닷없이 전자호구를 바꾼다는 통보가 있었고 선수들은 좀처럼 득점이 올라가지 않는 전자호구 때문에 경기를 풀어 가는데 애를 먹었다. 점수가 올라가지 않으니 변별력도 떨어졌고 선제 득점한 선수의 승률이 특히 높았다. 여자 49㎏급 1회전에서 올림픽 랭킹 8위인 이첼 만하레스(멕시코)는 초반에 1점을 딴 점수를 잘 지켜 1위인 루치아 자니노비치(크로아티아)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태훈이 1회전에서 가까스로 연장전 끝에 우세승으로 이긴 뒤 성재준 대한태권도협회 전무이사는 “전자호구가 바뀌면 한 두 달 전에 미리 통보해줘야 될 것 아니냐”면서 “점수가 잘 나오는 전자호구에 맞춰 훈련한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됐다”고 흥분된 어조로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WTF는 “전자호구가 바뀌었지만 모두 선수에게 공평한 것”이라며 일축했다.
이날 예선전이 끝난 뒤 WTF 기술위원회는 긴급 회동을 갖고 다득점이 가능하도록 대책을 논의했지만 유럽측 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필리핀의 홍성천 WTF 집행위원은 “런던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다득점 경기로 화끈한 승부를 펼쳤기 때문”이라면서 “득점에 인색한 전자호구로 인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태권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바뀐 전자호구 때문에...태권도 왕중왕전 혼란
입력 2015-12-06 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