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박근혜정권 퇴진 구호 외치지 않았다-평화지킴이 자처

입력 2015-12-05 21:48

새정치민주연합은 5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농민·노동계의 대규모 집회가 경찰과 시위측의 물리적 충돌없이 진행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평화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달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때처럼 부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막는 한편 시위가 폭력 집회로 변질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 '야당이 폭력 시위에 눈감는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여겨졌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 50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대회' 집회에 참석했다. 당 지도부는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평화 집회를 위한 중재 노력을 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의원들은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경찰의 폴리스라인과 시위대 사이에 일렬로 서서 '인간띠'를 만들었다. '평화 배지'와 파란색 머플러를 착용하고 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장미 한 송이를 들었다.

은수미 의원은 여당의 '복면금지법' 추진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가면을 썼고, 문 대표는 이에 대해 "가면을 쓰는 게 오히려 집회·시위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가면 쓰는 것 자체를 불법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또 집회에 합류하기 전 서울시의회에서 주최 측과 경찰, 시민이 모두 평화집회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내용의 '평화 지킴이 행동지침'을 발표했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제 다시 평화적 시위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며 "오늘을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하는 원년으로 삼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행여라도 경찰의 좀 더 도가 넘는, 분노하게 만드는 제재 행위가 있다고 해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평화적인 집회를 마쳐주기를 당부한다"고 집회 참가자들에 호소했다.

이 원내대표도 "평화집회에 함께하는 우리 마음은 결연하다. 국민은 새정치연합이 오늘 외치는 평화의 원칙을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서울광장에서 열린 집회가 끝나는 것을 지켜보고서 참가자들과 함께 무교로-보신각 로터리-종로4가를 거쳐 '1차 민중총궐기' 때 물대포에 다친 농민 백남기씨 쾌유 기원 문화제가 열리는 마로니에공원까지 행진했다.

의원들은 행진 대열 가장자리에서 일렬로 걸어가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없는지 확인하고, 일부 참가자들이 폴리스라인 바깥으로 나가면 안으로 들어오도록 설득했다.

의원들 주변에서 별 마찰은 없었지만, 서울시의회에서 한 여성이 "여야 대장님께서 평화시위 하려면 자기 지역구 챙기는 것부터 하라"고 외쳐 잠시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살인진압 규탄한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박근혜는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이 원내대표 등 일부 의원들도 따라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박근혜 독재 물러나라. 경찰청장 파면하라" 등 정권퇴진 성격의 구호는 같이하지 않았고 문 대표는 아무런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문 대표는 참가자들이 마로니에공원에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현장에서 철수했고, 일부 의원들은 문화제가 끝나기까지 남기로 했다.

문 대표는 행진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이렇게 얼마든지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정부도 박근혜 대통령도 오늘 집회·시위에서 시민이 하는 이야기, 노동자·농민의 절규와 애타는 호소에 좀 귀를 기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