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일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을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공식 발표 하루 만인 4일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최종 입장이 아니다”고 한 발 뺐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TV카메라 앞에서 직접 밝힌 ‘법무부 입장’이 ‘미확정 입장’이란 것이다. 법무부 스스로 전날의 발표가 성급하게 독단적으로 이뤄졌음을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 차관은 지난 2일 국회로 이 위원장을 찾아가 사시 폐지 유예 방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은 “법무부 입장만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건 부적절하다. 여러 부처와 좀 더 논의하라”고 주문했다. 법무부가 단독으로 준비한 방안은 법조인 기득권 유지에 무게가 기울 수 있으니 법률가 양성 시스템을 논의할 협의기구를 만들라는 제안도 했다.
김 차관은 이 위원장에게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이 사시 존치에 찬성한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여론조사 근거만 갖고 추진한다면 다른 사안도 여론조사 결과대로 다 따를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어 “법무부 의견이 있다면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원회에서 밝히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시 존폐 공청회 때 ‘입장 유보’ 의견을 냈다가 의원들의 심한 질타를 받았었다.
그러나 김 차관은 “공개 표명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 위원장은 “알아서 하시라”고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법무부 일개 부처의 의견”이라며 “교육부·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대법원·로스쿨 등의 의견도 들어서 유능한 법률가 양성에 합당한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3일 오전 ‘사시 2021년까지 4년간 폐지 유예 입장 발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와 함께 공식 브리핑을 열었다. 그 직전에야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대법원은 몇 시간 뒤 “법무부로부터 사전에 설명을 듣거나 자료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냈다.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로스쿨 관할인 교육부도 “우리와 협의한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법무부는 4일 오전 A4 한 장짜리 ‘설명자료’를 다시 냈다. 봉욱 법무실장은 “관련 단체·기관의 의견을 더 수렴하고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법무부 최종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봉 실장은 “법무부 의견은 (어제와) 같다”면서 “발표 이후 다양한 의견이 추가로 나온 만큼 열린 마음으로 의견수렴을 더 하는 쪽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사시 폐지 4년 유예가 최종 의견 아니었냐’는 질문에는 “법 개정은 법사위 1소위 논의가 끝나면 전체회의에서 논의된다. 최종 의견은 열린 상태에서 검토한 후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3일의 법무부 발표가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사시 마지막 1차 시험이 내년 2월인 만큼 혼란을 줄이려면 지금쯤 법무부 입장을 공개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만 밝혔다.
법무부가 입장 발표 24시간 만에 ‘후진’한 것은 국회 대법원 등 관련 기관의 시큰둥한 반응에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쪽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파문 확산 진화에 나선 셈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첨예하게 갈등하는 사안에서 미숙한 대응으로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갑작스럽게 독단적으로 입장 발표를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현수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단독] 법무부의 독단… 대법원도 교육부도 몰랐다
입력 2015-12-04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