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무부의 독단… 대법원도 교육부도 몰랐다

입력 2015-12-04 18:00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법시험 폐지를 2021년까지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법무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과천=이병주 기자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일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을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공식 발표 하루 만인 4일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최종 입장이 아니다”고 한 발 뺐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TV카메라 앞에서 직접 밝힌 ‘법무부 입장’이 ‘미확정 입장’이란 것이다. 법무부 스스로 전날의 발표가 성급하게 독단적으로 이뤄졌음을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김 차관은 지난 2일 국회로 이 위원장을 찾아가 사시 폐지 유예 방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은 “법무부 입장만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건 부적절하다. 여러 부처와 좀 더 논의하라”고 주문했다. 법무부가 단독으로 준비한 방안은 법조인 기득권 유지에 무게가 기울 수 있으니 법률가 양성 시스템을 논의할 협의기구를 만들라는 제안도 했다.

김 차관은 이 위원장에게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이 사시 존치에 찬성한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여론조사 근거만 갖고 추진한다면 다른 사안도 여론조사 결과대로 다 따를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어 “법무부 의견이 있다면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원회에서 밝히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시 존폐 공청회 때 ‘입장 유보’ 의견을 냈다가 의원들의 심한 질타를 받았었다.

그러나 김 차관은 “공개 표명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 위원장은 “알아서 하시라”고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법무부 일개 부처의 의견”이라며 “교육부·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대법원·로스쿨 등의 의견도 들어서 유능한 법률가 양성에 합당한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3일 오전 ‘사시 2021년까지 4년간 폐지 유예 입장 발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와 함께 공식 브리핑을 열었다. 그 직전에야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대법원은 몇 시간 뒤 “법무부로부터 사전에 설명을 듣거나 자료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냈다.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로스쿨 관할인 교육부도 “우리와 협의한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법무부는 4일 오전 A4 한 장짜리 ‘설명자료’를 다시 냈다. 봉욱 법무실장은 “관련 단체·기관의 의견을 더 수렴하고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법무부 최종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봉 실장은 “법무부 의견은 (어제와) 같다”면서 “발표 이후 다양한 의견이 추가로 나온 만큼 열린 마음으로 의견수렴을 더 하는 쪽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사시 폐지 4년 유예가 최종 의견 아니었냐’는 질문에는 “법 개정은 법사위 1소위 논의가 끝나면 전체회의에서 논의된다. 최종 의견은 열린 상태에서 검토한 후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3일의 법무부 발표가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사시 마지막 1차 시험이 내년 2월인 만큼 혼란을 줄이려면 지금쯤 법무부 입장을 공개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만 밝혔다.

법무부가 입장 발표 24시간 만에 ‘후진’한 것은 국회 대법원 등 관련 기관의 시큰둥한 반응에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쪽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파문 확산 진화에 나선 셈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첨예하게 갈등하는 사안에서 미숙한 대응으로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갑작스럽게 독단적으로 입장 발표를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현수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