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훈 연출 연극 <콜라소녀>로 돌아오다. 최주환 예술감독의 선택
1998년 창단한 대구시립극단이 35회 정기공연으로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 <콜라소녀·11월27~28일·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관장 최현묵>를 선택했다. 이 작품은 2012년 서울연극제에 공식 참가작으로 남자연기상(박성준·둘째 아들 역)과 관객 평가단 인기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2013년에는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과 아트원에서 앵콜 공연을 이어가면서 웰 메이드 작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최용훈 연출이 소녀의 콜라를 들고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시립극단 단원들과는 2001년 이근삼 작 <허생>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최용훈 연출은 서강대학교 연극반 출신으로 86년에 대학 연극반 선·후배들이 뭉쳐 극단 ‘작은 신화’를 창단해 단원들과 공동체 연극을 실천하고 있다.<불어를 하세요-Tiger>(1986),
<전쟁음악>,
이에 대구시립극단 35회 정기공연 객원연출가로 최용훈을 선택한 최주환 연출(극단 초이스시어터) 은 올해 3월, 대구시립극단 5대 예술감독이자 상임연출로 선임됐다. 상반기 정기공연으로 ‘레미제라블’을 연출하면서 최주환 체제의 대구시립극단 화력에 불을 당겨가고 있다. 최 감독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것은 대구시민들에게 가족애(愛)로 공감 할 수 있는 훈훈한 이야기를 겨울에 하고 싶었고, 추천을 받은 3편의 작품 중 최종 <콜라소녀>를 제 35회 정기공연으로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대구에서 극단 ‘초이스시어터’ 이끌면서 오비이락(2011), 오미스리(2013), 데자뷰(2014), 오미스리(2013), 역전에 산다(2015) 등을 선보이면서 평단의 좋은 반응을 받았다. 대구 발 토종뮤지컬 개발과 정착에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대구컬러풀페스티벌' 예술 감독을 2년 동안 이끌면서 다양한 퍼레이드 축제를 기획해 시민 참여 축제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다.
김숙종 작가는 2003년도에 근로자문학제에 <달집 태우기>가 당선돼 데뷔 했다. 이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에 <싱싱 냉장고>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전업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가정식 맛있게 먹는 방법>(연출 최용훈)으로 공연되면서 간결한 구성과 세련된 극적 전개, 맛스러운 대사와 인물들의 극적행위를 유발하는 장면에서 에피소드들이 참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콜라소녀>는 2011에 <배우, 희곡을 만나다>에 당선된 작품으로 최용훈 연출과는 두 번째 작업을 했던 작품이다. 작품 포스터를 보고 작품제목이 ‘왜 콜라소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첫 제목으로 <코카콜라>로 생각 했다고 밝힌 봐 있다. “콜라를 마시면 트림을 하고 코끝이 찡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한 가족의 이야기와 삶, 죽음, 상처로 얼룩진 내면의 자국들을 이 시대에 애틋한 가족애를 통해 치유가 시도한다.
서울발 대구행 <콜라소녀> ‘상처를 보듬은 톡 쏘는 가족 愛’
최용훈 연출이 14년 만에 손에 든 서울발 대구행 티켓의 종착지는 <콜라소녀>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콜라와 소녀의 중첩적인 세련된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대배경은 충청도의 허름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골한옥을 짖고 농사일을 하며 살아가는 큰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평생 집을 지켜온 할머니(노모)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큰 아들 환갑(還甲)을 맞아 흩어진 가족들이 모인다. 잔치를 준비하면서 극장은 전을 굽는 냄새로 마을의 풍경을 무대로 올려놓는다. 흩어져 살던 둘째, 막내아들 내외가 큰형의 환갑을 축하하러 시골집으로 찾아오면서 극은 속도를 낸다.
60~70년대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도시화 되면서 지역개발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의 갈등과 파국인해 속살들이 벗겨지는 현실사회의 부조리한 모순성들의 소재와 이야기들은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전형적인 한국사회의 근·현대화 역사에서 개발로 파괴되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 물질주의에 대한 인간사회의 거친 숨소리와 사회의 일그러진 덩어리들을 그려낸 소재는 이미 우리사회에 익숙한 소재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하게 농촌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해 부조리한 현실사회의 모순성의 일그러진 얼굴만을 안고 극중 인물의 갈등구조와 사건에 화력을 올려 그물망을 던졌다면 공감의 화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품은 가족이 부재해 가는 이 시대에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3대의 ‘가족史’를 통해 ‘가족愛’를 단출해져가는 이 시대에 들었다는 점에서 눈에 뛴다.
콜라는 극중 인물(손녀)가 할머니와 고모(명희)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꺼내진다. “콜라 마시고 트림하면 코끝이 찡해서 눈물이 나잖아.(중략) 트림 나올 때 마다 아프지 말라고 고모가 코 잡아줬어.(중략)콜라마시고 싶네.” 고모(명희)는 극의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는 인물이다. 삼형제의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이라는 점과, 명희의 죽음이다. 명희는 할머니의 내면과 기억의 환영으로 존재된다. 작가는 명희의 죽음을 설정하고, 형제의 갈등을 섞는다. 명희가 죽고 나서 사망보험금으로 나루터 주변 땅을 샀고, 그 땅이 뉴타운개발 선거공약으로 도시가 발전 된다는 설정의 전개는 형제들의 갈등축이 된다. 인물들의 갈등은 요란스럽지 않게 뉴타운개발이 물거품 되면서 욕망도 전소되고, 극의 구조는 끈끈한 가족愛로 결말을 봉합한다.
끈끈한 가족애로 이어놓는 끈은 배다른 동생 명희다. 동생죽음의 비밀은 극수면 밑에 있다. 어린 시절의 명희(소녀 역·이혜진 분)는 노모 기억과 환영으로만 존재되고 투영된다. 마음으로 낳은 딸 명희에 대한 그리움은 노모에게 절박한 사랑으로 투영된다. 노모에게 명희는 내면의 살아있음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다. 2012년도에 대가족 삼대의 이야기를 꺼내들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끈 것은, 인생의 상처들이 애틋한 사랑의 내면으로 향기를 피워 올려 공감을 얻었다. 콜라를 마시고 가슴이 뻥 뚫려지는 트림이 올라오는 것처럼 삶의 갈등의 고리를 타고 올라오는 각박하고 질긴 인생의 현실에서 삶과 죽음, 인생의 상처들은 가족애의 애틋함으로 살아갈만한 인생으로 돌려놓는다.
유교사회에서의 대를 잇은 장남의 역할은 섬김과 부모를 향한 효(孝)다. 가족사의 잔혹한 이야기들이 단골뉴스가 되고 한 대기업에서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난자한 ‘형제의 난’ 격투를 벌인다. 애틋하고 절박한 가족애 보다는 현실의 욕망만이 숨을 쉬고 소리를 낸다. 대가족 이라는 온기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잊혀 가는 온기가 되고 있다.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소재들이 현실사회 한복판에서 강렬한 막장으로 우리 삶 주변을 달구고 실시간 상영되는 현실세계에서 작가는 콜라 한 병을 들고 내면의 전류를 타격해 잃고 있는 가족 愛의 전류를 흘려보내려고 시도한다. 명희의 죽음, 노모 내면으로 집착되는 할머니와 명의 관계의 모호함, 뉴타운개발의 불발로 인한 물질주의 탐욕과 욕망에 대한 자연소멸, 화해, 유골이 뿌려진 나루터의 설정, 어린 시절 명희 기억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노모(할머니)의 기억과, 노모의 죽음 등을 설정해 공감의 내면으로 타격을 가한 여운만큼, 극적 발화의 화력은 모호한 온도로 유지한다.
가족의 부재와 가족愛 대구시립극단 <콜라소녀>
서울발 대구행 <콜라소녀>의 무대공간은 팔공 홀 공간 구조로 넓혔다. 1008석 규모의 팔공홀 무대에 충청도 어느 허름한 마을이 배경이다. 한옥 한 채가 올라서 있다. 집 주변은 어느 시골마을 전경과 유사하다. <콜라소녀>의 공간성은 감정의 정서적 간극을 좁힐 수 있어 중요하다. 초연공연과 앵콜 공연에서는 큰아들(정용철 분)은 장남으로서 깊은 고뇌의 감정들이 대사의 사이에 숨을 쉬고 극적 행동에 간극의 차이를 섬세하게 움직여 가며 내면의 심리를 좁히고, 섬세한 감정의 전류들로 소극장 무대를 채웠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가족애의 고뇌는 강한 여운으로 작품의 온도를 올렸다. 둘째 며느리(김남진 분) 유쾌한 성격묘사와 둘째아들(박성준 분)과의 탄력 있는 호흡으로 극의 리듬을 형성했다. 극에 강한 양념을 쏟아 부으면서 작품의 탄력과 인물들 내면의 깊은 정서적 골격들은 리듬을 타며, 생동감 있는 공감의 언어로 숙성시켰다.
작가 특유의 대사들에 세련된 맛을 구사했고, 연출은 정갈한 밥상으로 올렸다. <콜라소녀>의 1장은 큰아들 환갑을 맞아 고향으로 찾아오는 (둘째, 셋째 아들 내외) 방문이다. 1장에서는 노모의 내면으로만 투영되는 명희 죽음은 환영으로만 들어난다. 청국장 콩을 말리고 쓰다듬는 노모는 명희엄마로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중첩된다. 의붓딸 명희가 망자가 됐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명희의 죽음이 할머니의 내면의 전경으로만 투영되고 노모는 태생이 불분명한 명희의 어린 시절 환영에 집착한다. 명희 죽음의 비밀은 극 구조에 수면아래에 있다. 명희의 죽음은 형제와 가족들만 알뿐이다. 노모 환영에서 명희는 살아있는 존재다. 명희의 죽음을 알지만 애써 그 내면에서 지워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고 상처다.
뉴타운개발로 두 형제와 며느리들이 얽혀 있는 물질의 욕망의 탐욕들은 내면의 갈등구조로 얽혀있다. 이 내면의 갈등을 풀어내는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배다른 동생 명희의 죽음이다. 사망 보험금은 동생 명희의 유언으로 갈대발 근처 땅을 사 잃어버린 노모의 땅을 지켜냈다. 선거 공약이 물거품 되면서 갈등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손녀(김정연 분)은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노랑나비가 되는 것을 보고 “애벌레가 죽은 걸까? 나비가 태어난 걸까?”라는 대사를 던진다. 할머니에게 나비는 사내(최우정 분)의 대사처럼 윤회(輪廻)적인 영생불멸의 존재성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존재한다. 죽음으로써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노모에게 명희는 삶을 이어가는 생명이다.
피 붙이가 아닌 딸 어린 시절의 환영을 놓지 못하는 노모는 죽음으로써 용서의 가슴을 내민다. 1장에서는 노모와 명희의 죽음과 관계 설정, 큰아들 환갑잔치로 모여든 형제들 간의 생활의 속살들이 가벼운 갈등구조를 이루면서 극은 순항한다. 큰 며느리는 은행열매를 따러가는 둘째아들을 향해 “은행 좀 터세요”라고 던진다. 작가는 극중 장면 대사에 발랄한 언어를 입혀 놓고 리듬을 형성한다. 1장에서 형제들의 다툼과 절박한 사연들이 쏟아진다. 대구에서 시집간 인물로 설정된 둘째 며느리(김미화 분)은 극에 양념을 치면서 활력 높이고 장면의 온도를 유지한다. 시골집에 모여든 형제들의 생활의 사연들은 소박하다. 시골 집 일대에 레저타운이 들어선다는 소식으로 형제들의 삶의 욕망은 기대심리로(은행 정규직, 식당사업, 셋째의 사업자금)로 확장되면서 내면의 갈등구조를 형성한다. 땅을 구입한 돈은 아이러니 하게도 배다른 동생 명희의 사망보험금이다. 노모가 평생 떡 장사해서 모은 돈으로 땅을 사서 삼형제 뒷바라지 한 노모다. 아들 때문에 땅을 잃은 것을 되찾게 한 것은 죽음으로써 땅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명희다.
2장(나루터)로 가족들과 소풍을 가면서 가족애의 상처는 확장 되고 화해를 시도한다. 나루터는 명희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다. 노모의 ‘쑥부정이 꽃’ 집착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다. 배다른 형제 명희의 대한 노모의 집착은 뱃사공얘기의 유머를 형성하면서 배다른 자식이지만 사랑의 온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다. 나루터 소풍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할머니도 환갑이 이어 두 번째다. 환갑은 60갑자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태어난 해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루터는 죽음과 새 생명이 교차되는 공간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다. 노모 기억의 내면으로 돌아가야 할 흙이다. 노모에게 나루터는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공간이다. 가족애를 붙들어 매고 지켜야 할 유산이다. 강 건너를 향한 노모의 손인사와 일제히 가족들이 따라하는 장면은 노모의 죽음을 예견하고 명희에 대한 화해의 손짓이다.
3장에서는 뉴타운 선거공략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형제들의 물질의 욕망도, 상처의 내면도, 갈등의 확장도, 땅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소멸된다. 가족들은 물질의 욕망이 소멸되면서 화해 될 수 있다. 상처는 용서로 보듬어 질수 있다. 애벌레가 죽음으로써 나비로 새 생명을 얻는 것처럼, 가족애의 애틋한 온도도 난잡한 욕망을 전소시켰을 때 삶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평생 모아든 통장을 막내며느리(이혜정 분) 에게 내미는 것도 큰며느리(김경선 분)다. 용돈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둘째아들(박상희 분)에게 몰래 쥐어주는 노모. 늙은 호박에 호들갑을 떨며 집착을 보이는 둘째 며느리(김미화 분)와 마음으로 챙겨주려는 큰며느리의 내면은 가족愛의 온기를 방사하면서 물질욕망의 탐욕으로 얼룩진 상처와 쓰린 내면의 냉기에 가족愛로 만들어진 약을 바른다.
<콜라소녀> 남성의 부재와 자본의 욕망
<콜라소녀> 극 텍스트 수면 밑은 남성의 부재를 형성한다. 노모의 내면을 쓰다듬고 있는 것은 삼형제가 아닌 배다른 딸 명희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장남과 두 형제는 남자다. 장남은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지만 노모의 내면은 장남이 아닌 죽은 명희에게 집착된다. 둘째와 셋째는 노모를 부양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계가 어렵고, 평생 떡 장사를 하면 모아둔 돈으로 땅을 사고 그 땅을 팔아 뒷바라지 해준 자식들이다. 노모의 집착은 아들이 아닌 딸 이다.
큰아들의 자식인 용철이는 미국에 가있고, 남기는 중국으로 가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미국과 중국의 유학열풍과 영어, 중국어 배우기 등 세계 G1,2 국가의 거대한 자본주의로 형성된 시장경제의 거대 그림자가 한국사회를 덮으면서 미국과 중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터져 나온다. 콜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본주의로 얼룩진 인간의 욕망을 강하게 우회적으로 상징화 된다. 콜라와 소녀의 묘한 대비 구조를 이루면서 사회현상을 투영시킨다.
시골은 고향이고 지켜야 할 유산이다. 극의 배경이 되는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레저타운 건설과 개발 붐으로 인해 인간의 물질주의 욕망은 넘쳐나고 자본에 대한 집착과 탐욕성은 거칠어진다. <콜라소녀>에서 등장하는 둘째와 셋째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거나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다. 둘째 며느리는 늙은 호박 한 개라도 더 가져가려는 생활을 강한 애착을 보이고, 셋째 며느리는 남편의 사업을 돕다가 오히려 손가락이 잘려 나갈 정도로 헌신하고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의 어려운 삶을 지켜내는 것도 통장을 내미는 큰며느리다.
또한 유일하게 노모가 대화를 시도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손녀와 죽은 딸 명희다. 아버지 환갑잔치에 가족의 품을 지켜내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동요 ‘곰 세 마리’를 부르며 가족의 따뜻한 내면의 온기를 이식하는 것도 손녀(김정연 분)이다. 작가는 현 시대의 여성의 역할을 확장하면서 가족 愛로 봉합한다. 살아갈 만한 살점으로 이식시켜 놓는 것은 여성의 헌신이다. 콜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본주의로 얼룩진 인간의 욕망을 강하게 우회적으로 상징화 된다. 콜라와 소녀의 묘한 대비 구조를 이루면서 사회현상을 투영시킨다. 인간의 물질욕망은 탐욕으로 갈라지고 도시를 잠식해 가는 사회현상의 어두운 얼굴을 밀어 넣는다.
콜라와 대비감을 주는 것이 소녀다. 소녀는 명희이며 땅을 키며내고 갈라진 상처를 보듬는 인물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땅을 지켜내는 것은 노모의 마음으로 낳은 딸이다. 콜라를 마시고 트름을 하면 코끝이 짠해 지는 것처럼, <콜라소녀>의 제목이 발칙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열된 반찬들은 정갈한데 식욕을 강하게 돋울 수 있는 반찬 향기는 진하게 풍기지 않아 가슴 톡 쏘는 강렬한 입맛은 잡아당기지 못했다. 그러나 <콜라소녀>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가족 愛의 전류를 흘려 내면의 공감온도로 우리 입맛에 맞는 정갈한 밥상으로 차려놓았다. 손녀와 결혼하게 될 사내(최우정 분)과 평상에서 술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콜라를 삼키고 올라오는 트림의 뻥 뚫림처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절여온다. 서울발 대구행 <콜라소녀>는 공간의 확장으로 인해 온도 있는 내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대구시립극단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는 가족愛의 온기를 점화시켰다. 배우들은 이번 <콜라소녀>가 전작공연의 부담감이 있었겠지만 노모(백은숙)은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고, 둘째 며느리(김미화)는 극의 양념을 치며 극을 균형 있게 유지했다. 대구시립극단의 <콜라소녀>는 12일(토) 성주문화예술회관 초청공연으로 이어진다. 가족들과 함께 볼만한 공연이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