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SOC예산 챙기기 신풍경 “도로·다리 대신 도서관.문화시설”

입력 2015-12-03 17:28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진화'하고 있다.

도로 닦고, 철길 깔고, 다리 놓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교육·문화·종교시설 지원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에는 도서관·종교·문화시설 건립이나 개·보수 관련 예산의 증액, 또는 아예 정부 원안에 없던 사업의 비목(費目) 신설이 수두룩하게 담겼다.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강서구에 세워지는 '기적의 도서관' 사업은 애초 정부 원안에 없던 예산 16억원이 반영됐다.

김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부산에서 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지역"이라며 "약 40억원 규모로 도서관을 짓는 데 국비 16억원이 지원되도록 강력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부산 진구에 짓는 '부산국제아트센터' 건립 예산도 정부는 107억원을 책정했으나, 예산에는 23억원이 증액됐다. 이 사업 증액에는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진구갑)이 관여했다.

김 의원과 나 의원은 모두 이번 예산을 심사한 국회 예산결산특위 소속이다.

서울 성동구에선 성동독서당의 '인문 아카데미' 사업 예산으로 10억원이 신규 편성됐다. 성동독서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인 최재천 의원(성동구갑)의 지역구에 있다.

전북 정읍시의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조성' 예산은 당 대표,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위원, 지방자치단체장의 '삼각 플레이'가 발휘돼 애초 10억원이던 예산이 35억원으로 3.5배로 불어났다.

소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새정치연합 이상직(전북 전주 완산구을) 의원은 연합뉴스에 "김생기 정읍시장이 문재인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했고, 문 대표 지시에 따라 막판 계수조정 과정에서 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신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차원에서 종교시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경남 거제시에 만들어지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한국방문 기념문화전시관' 건립 예산 10억원은 천주교 마산교구의 요청에 따라 천주교 신자인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경남 창원 마산합포구)이 '힘'을 써 신규 반영됐다.

전북 전주시의 천주교 사적지인 '치명자성지 세계평화의 전당' 건립 예산 5억원도 천주교 신자인 새정치연합 김성주 의원(전북 전주 덕진구)이 이웃 지역구의 이상직 의원에게 '민원'을 넣어 신규 반영됐다.

예산 9억원이 새로 반영된 '마곡사 전통문화 체험관' 건립사업은 새정치연합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시)의 지역구에서 진행되며, 전남 구례(새정치연합 우윤근)의 연곡사, 충북 청주의 화림사(새누리당 정우택), 경남 양산(새누리당 윤영석) 원효암 등 전국 사찰의 보수·정비에도 국회 심사과정에 예산이 나란히 2억원씩 편성됐다.

예결위 관계자는 "문화·종교 시설은 SOC에 비해 금액 부담이 적은 데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없이 짧은 기간에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며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지역구 의원에게는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명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포괄 사업 예산에 끼워넣거나, 자신의 지역구로 사업을 끌어오기 위해 예산 심사 단계에서 다른 지역구의 사업을 삭감한 사례도 있다.

이번에 3억원이 신규 반영된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은 철도기본계획수립 예산에 포함됐다. 남부내륙고속철도는 김재경 예결위원장의 지역구(경남 진주시)와 역시 예결위원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의 지역구(경북 김천시)를 잇는다.

김 위원장은 예산안에 "예타를 통과하는 즉시 철도기본계획수립비 예산을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아 예산 집행을 확실히 '단속'하기도 했다.

이주영 의원은 경기도 의왕시에 건립이 추진되던 '민주주의기념관' 건립 예산 40억원 삭감을 주도했다. 이 사업은 애초 정부안에 없던 게 '쪽지예산'으로 상임위 단계에서 반영됐으나, 이 의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인 3·15 의거가 일어난 마산에 먼저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며 예결위원들을 설득해 삭감했다는 후문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