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달라" …가난한 사람들의 따뜻한 기부 '뭉클'

입력 2015-12-03 16:44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주민센터에 지난 1일 익명의 기부자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달라"며 보내 온 쌀과 라면. 청주 용암2동 주민센터 제공

지난달 23일 영광군 염산면사무소에 한 중년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여성은 “내가 홀로 심고 재배한 고구마를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고 싶다”며 고구마를 캐서 쌓아 놓은 하우스 위치를 가르쳐줬다. 면장과 직원들이 하우스에 가보니 고구마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이들은 20㎏ 상자에 고구마를 담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50상자(1000㎏·200만원 상당)나 됐다. 면사무소측은 이 여성의 요청대로 지역의 경로당 38곳과 복지시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작은 교회 등에 고구마를 일일이 배달하며 뜻을 전했다.

고구마를 받아든 이웃들은 “그 분도 넉넉한 살림이 아닐텐데 손수 키운 고구마를 나눠주는 마음씨에 감동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50대 초반인 이 여성은 10여년 전 귀농해 밭작물을 재배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1일에는 강원도 철원군 서면사무소에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의 여성은 “계좌번호를 좀 알려 달라. 자등리에 사는 어려운 분들에게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이윽고 알려준 계좌로 100만원이 익명으로 입금됐다. 그녀는 지난해 11월에도 자등리 이웃들에게 써달라며 똑 같은 방식으로 100만원을 기부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아마 어린시절 그 마을에서 어렵게 사셨던 분이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 기부를 하는 것 같다.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가난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더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선뜻 내놓은 ‘가난한 자의 기부’는 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이 내놓는 10만원, 1만원은 부자가 내놓는 10억원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올해 세밑에도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천사’들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 주민센터에는 익명의 시민이 최근 쌀 10㎏짜리 10포대와 라면 10박스 등 34만원 상당의 물품을 보내왔다. 그는 2013년 추석을 앞두고 쌀 20포대를 기부하더니 매년 추석과 연말에 쌀과 라면을 이 동사무소에 전달했다.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는 쌀을 기탁했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에는 얼굴 없는 쌀 기탁자가 10년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농사를 짓는다는 이 기부자는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매년 직접 농사지은 쌀을 기부하고 있다. 올해도 쌀 20㎏짜리 30포를 어려운 이웃에게 주라며 하남읍사무소 창고에 두고 갔다.

지난 2일에는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저마다 저금통을 든 초등학생 ‘꼬마 손님’ 20여명이 찾아왔다. 서광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 후 생활’을 하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맡기고 간 20여개 돼지 저금통을 모으니 68만9810원이나 됐다. 어린이들이 올초부터 1년 가까이 부족한 용돈을 쪼개 모은 동전이었다. 이 곳 어린이들은 2013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34만3370원과 42만4360원을 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광주 우산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래인(69)씨는 자신도 기초수급자이면서도 2009년부터 매년 연말에 12만원을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놓고 있다. 매달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에서 1만원씩 떼어 모은 돈이다. 이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에 따른 장애수당 등 매달 40만원으로 살고 있다. 그는 이미 2009년 전 재산인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 172만원과 시신을 기부키로 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전국종합 adhong@kmib.co.kr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