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 외에 나머지는 졸(卒)” 거래 정치에 의원 상임위는 거수기

입력 2015-12-03 12:18

정치권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법률들을 처리했으나 막판까지 극심한 혼란과 구태를 거듭하면서 한국 정치의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의화 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리 모두 자성하고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듯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든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 기간 법안과 예산안을 '바꿔먹기', '끼워팔기'하는 등 흥정하는 듯한 모습을 거리낌없이 보여줘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예전에도 이 같은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욱 노골적이었고 여론의 질타도 아랑곳않는 모습이었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상 예산안 처리시점이 12월 2일로 정해진 점을 사실상 적극 활용했다. 여당 지도부는 예산안과 법안을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야당 압박에 나섰다.

야당 역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예산·법안과 연계하는가하면 '대통령 관심법안'인 관광진흥법 처리를 두고 "법안 1개랑 바꿀 게 아니다"라며 여러 법들을 '저울질'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법안을 엮어서 5개나 처리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와 정무위 법안을 엮었다"면서 "모든 게 거래 비슷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의원들이 자기 권한을 지도부에 넘기니까 이것저것 바꾸고 섞고 그러는 것 아닌가"라면서 "국회가 많은 대표자들의 용광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도 통화에서 "시간에 쫓겨 법안은 법안대로, 예산은 예산대로 충실히 심의하지 못했다"며 "정치가 마치 거래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예산과 법안 심의가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실질적 내용에 접근하기보다는 여야 지도부의 정략적 접근에 좌우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야 원내 지도부가 심야 마라톤 협상 끝에 쟁점 법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소관 상임위들에서 일제히 제동이 걸린 것도 지도부의 일방통행와 무관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예전 같으면 본회의 직권상정 이전에 상임위에서 타협이 됐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상임위에서 거의 해결이 안 되고 다 지도부 협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태"라고 꼬집었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정해진 국회법 절차에 따라 법안 숙려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졸속·부실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국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상임위를 무시하거나 생략하는 관행이 습관화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진통이 끊이지 않으면서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넘겨 이날 새벽에 처리된 것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잘못된 행태로 꼽혔다.

일부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이 국회 내 날치기나 몸싸움을 근절하는 데 기여했지만 국회의 심의기능 무력화라는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국회에 원내지도부, 당 지도부 몇 명만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졸'(卒)'"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협상하면 무엇하나. 원내지도부에서 타결이 되지 않으면 통과시킬 방법이 없다"며 "지도부나 소수 강경파가 아니면 목소리를 아예 못내는 구조"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정성호 의원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것이 국회 스스로 대화와 타협 능력이 없음을 국민에게 선언한 것"이라며 "국회의 대화와 타협, 양보의 문화를 만들지 않고 법으로 날치기만 막는 한 이 같은 행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보다 더 나쁜 관행이 만들어졌다. 19대 국회가 역대 가장 비효율적이고 무능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바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하루아침에 나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대립구조가 문제"라며 "여야가 대립하더라도 좀 더 차분하게 충분히 논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나아진 측면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