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볼모로 법안 끼워팔기 구태 재연” 여야 원내지도부 협상력 부재 노출

입력 2015-12-03 08:38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구태는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여야의 정치공방 속에 예산안 심의를 위한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 회의는 툭하면 파행하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가다 서다를 거듭 했다.

그 결과 예결위는 지난달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짓지 못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된 뒤 '법외심의'라는 비공식 물밑협상을 통해 뒤늦게 국회 본회의에 수정안을 제출해 의결하는 변칙 심의를 벌였다.

여야가 정쟁에 휘말려 국회의 예산안 심사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도 예산안과 관계없는 법률안의 '끼워 팔기'가 재등장했다. 예산안의 법정 시한내 처리가 12년 만에 이뤄졌던 지난해에는 잠시 사라졌던 풍경이다.

지난해 예산안 심의에 진통을 겪을 때는 창조경제를 비롯해 이른바 야당이 지목한 '박근혜표 예산'과 담뱃값 인상, 누리과정 예산의 부담주체 논란 등 그나마 예산과 직접 관련된 게 핵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엉뚱한 법안과 연계하면서 문제가 더욱 꼬였다. 해가 갈수록 상황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더욱 악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여당이 예산안과 법안처리 연계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고 야당도 뒤질세라 같은 수법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됐다.

새누리당은 여야 합의를 통한 예산안 처리 조건으로 경제활성화법안으로 지목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 관광진흥법 등의 처리를 요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모자보건법,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지위 향상법, 대리점거래의 공정화법 처리를 반대급부로 요구했다.

그나마 이렇게 '포로 교환'처럼 이뤄진 합의가 지켜지지도 않았다.

여야는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9시께부터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협상을 이어가며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날이 밝으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뒤집히고 말았다.

'밤샘', '마라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협상을 통해 나온 합의문은 결국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어렵게 만든 합의문조차 야당 내부로부터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서로 맞바꿔 통과하기로 한 법안을 제대로 처리하느냐 논란을 벌이다가 상임위에서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처리됐다. 더욱이 법사위에서는 아예 심사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여야 지도부가 상임위의 법안심사권한을 무시하고 법사위의 법안 숙려기간 5일을 무시한 채 법안 처리 시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야 지도부는 법사위원장의 법안 처리 반발이 충분히 예상됐지만 사전 설득 과정과 같은 정치력이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심야합의 내용은 예산안과 무관한 법을 끼워넣기 하는 행태로서 예산안과 연계성이 없는 법안을 '떨이식'으로 처리하는 행태는 극복돼야 할 구태"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의 비판은 새겨들을 대목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숙려기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심사 자체를 거부한 것도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숙려기간의 의미는 법안을 꼼꼼히 심의하라는 취지인데 단순히 5일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심사를 하지 않는 것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결국 5개 쟁점법안은 당초 여야 합의와 달리 시간에 쫓겨 상임위에서 처리된 뒤 법사위를 거치지 않은 채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올라 처리됐다.

여기에다가 몇차례 연기 끝에 오후 11시가 지나서야 본회의가 겨우 개의되면서 예산부수법안과 예산안 처리가 법정처리 기한인 2일 자정을 넘겨서 처리됐다. 졸속심사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