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또 헌법을 어겼다” 내년 예산안 법정시한 48분 초과 처리

입력 2015-12-03 08:31

국회가 헌법이 정한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고작 48분 차이로 지키지 못했다.

국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킨 날짜는 3일 0시 48분으로, 법정 처리시한을 48분 초과해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본회의 문턱을 넘으려는 예산안의 발목을 붙잡은 건 2일 하루종일 공방을 지속한 여야 지도부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날이 밝자마자 불과 몇 시간 전에 여야 원내지도부가 합의한 법안 5개에 대해, 국회법이 정한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사위 처리를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심야협상 결과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새누리당에 양보한 법안(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에 비해 야당이 얻어낸 법안(모자보건법·대리점거래공정화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급이 맞지 않다며 "여당에 일방적으로 끌려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본회의 개의가 지연될 조짐이 나타나자 새누리당은 즉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당의 직권상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도있는 법안 심사를 위해 오는 8일을 심사기일로 지정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여당 지도부는 다시 '합의된 법안을 오늘(2일) 반드시 본회의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 의장에게 거듭 전달했다.

이같은 여당 지도부의 행보에 대해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의원직 사퇴까지 해야 할 상황이라며 정 의장에게 읍소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경제활성화법의 본회의 처리에 사활을 건 여당 지도부 뒤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있었다.

최 부총리는 오후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 의장을 설득했고, 현 정무수석도 국회에 들어와 상황을 계속 예의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 의장이 5개 법안에 대한 심사기일을 당초 제시한 8일이 아닌 2일 밤 9시로 앞당기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던 국회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보건복지위 등 5개 법안 소관 상임위가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 일제히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신속하게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번엔 새정치연합의 의총이 본회의 개의를 늦추는 막판 요인이 됐다.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된 야당 의총은 협상 결과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5시간 가까이 진행되면서다.

결국 야당은 치열한 내부 토론 끝에 합의문의 표현을 '합의처리'에서 '합의한 후 처리'로 일부 수정하는 조건으로 5개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추인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가 개의한 시간은 전날 밤 11시 10분이었다.

그러나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토론과 표결이 진행되면서 날짜가 2일에서 3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에 정 의장은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기 위해 산회를 선포했고, 그 순간 여당 의석에서 "차수 변경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야당이 늦게 들어왔기 때문 아닌가"라며 '네 탓 공방' 성격의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정 의장은 "제가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내년도 예산안은 이렇게 여야 공방 속에 떠밀려 이날 0시 48분이 돼서야 본회의 문턱을 간신히 넘었고, 나머지 법안들까지 본회의에서 처리된 후 산회가 선포된 시간은 이날 오전 2시 9분이었다.

이날 예산안이 본회의 문턱을 통과하기 직전까지 여야 의원들의 토론발언도 이어졌다.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치유 못 하는 국회가 국회라고 할수 없다"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 예산안은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숫자가 제대로 담겨있지 않다"고 비판했으며, 지난 1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의 심야 협의를 '거대 양당의 밀실 합의'라고 비난한 정의당의 정진후 원내대표와 서기호 의원도 발언대에 섰다.

지난해 처음으로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지켰던 국회는 그동안 '예산안 처리시한을 준수하는 전통을 만들겠다'며 공언(公言)해왔지만, 불과 1년 만에 이런 약속은 공언(空言)이 됐다.

앞서 국회는 2012년에 예산안을 이듬해 1월 1일 오전 6시 5분께 처리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기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고, 2013년에도 이듬해 1월 1일 오전 5시 15분에야 예산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