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혹은 몽니?” 여야합의 법안 처리 거부한 법사위원장 왜?

입력 2015-12-03 00:34

여야 원내지도부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5개 쟁점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이 국회법 위배를 이유로 제동을 걸고나서 법 처리를 둘러싼 진통을 겪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여야 합의내용이 알려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상임위에서 결론조차 나지 않은 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며 해당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오더라도 이날중 심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거는 졸속심사를 막기 위해 법안이 상임위에서 법사위로 넘어오면 5일 간 숙려기간을 두도록 한 국회법 59조다.

즉, 2일 새벽에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놓고 이날중 법사위에서 처리하라는 것은 규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은 법사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다.

이 위원장이 완강하게 버티자 여야 원내대표는 고심 끝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법사위원장 취임 후 각 상임위에 국회법상 숙려기간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공문을 보낼 정도로 이 문제에 엄격한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지난 9월 여야 원내대표가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을 합의하고 법사위 개최를 요구하자 "법사위는 벽돌공장이 아니다"며 법사위 소집을 거부했다.

지난 1월 '김영란법' 정무위안이 법사위로 회부됐을 때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며 상정을 보류, 2월 국회로 넘기기도 했다.

이 위원장의 소신 행보에 대해 여야 지도부 합의까지 상임위원장이 좌지우지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과 함께 국회법이 정한 심사 과정을 무시하고 합의를 도출해온 관행에도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이 나온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략적으로 법안을 지연시킨다면 이는 문제"라면서도 "법안을 법사위에서 제대로 심사도 못한 채 한 시간만에 처리해 본회의로 보내라는 식은 어렵다"고 말했다.

법사위는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권한을 갖고 있어 이 권한을 법안 처리 지연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에도 종종 직면했다.

특히 법사위원장은 관행적으로 야당 의원이 맡기 때문에 야당 입장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체계·자구 심사를 이유로 법안의 본회의 회부를 늦출 수 있다.

이에 따라 여야 간 쟁점법안이 어렵사리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 관문에서 기약없이 계류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난 5월에는 공무원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진통이 빚어지자 새정치연합은 이 위원장이 법사위를 통과한 60개 법안에 대한 전자결재를 하지 않도록 해 본회의 회부를 막았다.

여당을 중심으로 법사위 개편론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3년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계류시켜 통과를 지연시키는 등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악용돼 왔다는 것이 발의 배경이었다.

새정치연합이 여당이던 17대 국회 때도 행정도시특별법 처리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법사위를 점거해 법안 처리를 방해하자 법사위 기능과 권한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