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에서 떨던 아이들에게 정부가 공식 사과했다…페이스북으로 [공감뉴스]

입력 2015-11-29 12:25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의 26일 영결식 당시 어린이 합창단이 강풍과 눈발 그리고 영하의 추위에 떨었던 사실에 SNS가 들썩였습니다. 상주인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까지 나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영결식을 주관한 행정자치부가 공식 사과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입니다. 독재와 권위주의의 긴긴 정치사를 거쳐 온 한국에서 정부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번엔 SNS에서나마 좀 달라진 걸까요?

행정자치부 공식 페이스북은 28일 “추운 날씨에 故 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 참석한 어린이 합창단과 그 가족들에게 행정자치부 의정관이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라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괄호로 묶어 놓았고 경어체를 썼습니다. 행자부 의정관은 국가의 공식 의례를 주관하는 직위입니다.

이어 글은 “故 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을 준비한 행정자치부 의정관입니다”라며 “먼저 참석한 어린이 합창단에게 미처 추운 날씨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여 따뜻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빠른 시간 내에 찾아뵙고 직접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영결식 당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곡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기 위해 초청된 국립합창단,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들이 얇은 옷으로 2시간 가까이 강바람 추위가 몰아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버틴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선 한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앞두고 건강 때문에 영결식에 불참했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 및 고관들께선 무릎 담요에 두꺼운 외투를 겹겹이 껴입고 계셨습니다. 이는 유니폼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시민들의 분노지수를 키웠습니다.

보다 못한 상주 현철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버님 영결식에 나온 어린이 합창단들이 갑자기 몰아닥친 영하의 추운 날씨에 떨었다는 소식에 유가족의 한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5일장 내내 침묵을 지키던 현철씨가 장례에 관해 내놓은 첫 메시지였습니다. 이어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결과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얇은 유니폼과 고관들의 무릎 담요, 이런 대비가 한국 사회에선 더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겠죠. 공감과 분노가 점점 더 쉽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행자부 의정관께선 현철씨의 표현을 빌려왔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어서 “이번 일로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상처를 받지 않으시길 바라며 앞으로는 더 세심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한 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행자부 페북지기는 페친들의 댓글에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거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 영결식이 있었지만 민주화와 화합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진 못했습니다. 대통령부터 불참했으니까요. 영결식 연출도 아이 키우는 부모들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무언가 도움되는 걸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SNS는 진솔한 사과를 전하기 좋은 매체라는 점, 그리고 이런 것이 소통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 말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