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나흘째인 25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서거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지난 22일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은 나흘째 조문객을 맞는 상주 역할을 했다.
'35년간의 악연'으로 얽히고 설킨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오후 4시께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이름 석 자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는 글를 남겼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에게 악수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10분가량 빈소에 머문 전 전 대통령은 "이번 조문이 김 전 대통령과의 역사적 화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병환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를 대신해 빈소를 찾아 10분간 문상했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굴곡의 관계로 얽힌 두 정치 지도자의 아들들은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짧은 위로를 주고받았다.
이날 독일 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빈소를 방문한 정의화 의장은 "김 전 대통령께서는 산업화를 통해서 민주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이시대의 영웅"이라며 "사회가 통합되고 경제가 발전하고 통일로 나아가길 바랐을 텐데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정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은 의회주의자로 생전 민주화 투쟁 속에서도 결코 의회를 떠나지 않았다며 "고인의 서거가 여야의 정국 경색이 풀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도했다.
최형우 전 내무장관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오후 다시 빈소를 찾아 조문객을 맞았다. 새누리당 홍문종 배덕광 이장우 하태경 의원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뒤를 이었다.
특히 서 최고위원은 최근 정치권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에 대해 "저 분이 퇴임하시고 병원에서 2년 반 이상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하던 인사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도리가 아니다"라며 세태를 한탄하기도 했다.
또 "나는 저 어른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다. 비서실장도 했고 정무장관과 16대 국회 첫 원내총무 등 참 많이 맡겨주셨다"며 "주위 사람들이 외환위기 사태 때 '표 잃는다. YS랑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개혁과 변화를 위해 진보 보수 '대탕평' 인사정책을 펼쳐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 게 김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이라고 거들었다.
문민정부 초대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낸 이경재 전 한나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았다.
이 전 의원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4·19묘지를 처음 방문하시고는 해장국집에 가서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곳이 초라하다'고 하셨다"며 "얼마 뒤 묘소가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을 경호했던 청와대 직원 10여명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빈소를 찾았다.
양재열 전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고인은 직원들과 같이 조깅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며 "대통령이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하면서 국민과 친숙해졌지만 경호하기 상당히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의 소탈했던 모습을 전했다.
유성근 전 수행부장도 "(김 전 대통령이) 아무 데나 막 자유스럽게 가니까 (직원들이)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손학규계인 양승조 조정식 이춘석 의원, 김유정 전 민주당 대변인을 비롯, 오영식 최고위원, 김영록 윤후덕 의원의 조문도 이어졌다.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도 이른 오전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프랑스는 우리의 친구이자 위대한 민주주의자를 잃었다"며 "김 전 대통령께서는 한국에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첫 국빈방문을 했던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을 맞아 주신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대사관 측도 직무대리를 통해 위로를 전했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 이재후 김앤장 대표 등 법조계 인사들이 조문행렬에 동참했다.
포스코그룹 권오준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한화그룹 최상순 부회장, 이건창호 박영주 회장, 김임권 수협중앙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임정규 전 수자원공사 사장과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권오규 전 부총리,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권영진 대구시장, 이석채 전 정통부 장관, 김종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과 현경대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빈소에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야구선수 박찬호 역시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이 저를 처음으로 청와대라는 곳에 초대해 주셨다"며 "당시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오랜 이웃인 이규희 씨도 가족들과 빈소를 방문해 눈물을 훔쳤다.
22일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3만2천여명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전두환, 35년의 악연 YS 방명록 글 남겨
입력 2015-11-25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