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노래하는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

입력 2015-11-24 16:41
‘여름보다는 겨울의 정서, 낮보다는 밤의 이야기, 거시적인 담론보다 내면의 목소리.’ 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의 이준오(프로듀싱·DJ)가 말하는 ‘캐스커의 음악’은 이렇다. 차가운 전자음, 잘 짜여진 선율에 감성적인 가사를 부르는 청아한 목소리(보컬 융진)가 더해지면서 완성되는 ‘캐스커’는 오랫동안 ‘심장을 가진 기계 음악’이라고 해석됐다.

‘캐스커’가 3년의 공백을 깨고 7집 ‘그라운드 파트 원(Ground part one)’을 지난달 발표했다. 10년 동안 6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활발히 활동해 왔기에 3년의 공백은 긴 시간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색깔로 돌아온 ‘캐스커’를 24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앨범은 이준오의 아이슬란드 여행이 모티브가 됐다. 이준오는 지난해 10월 홀로 아이슬란드에서 3주를 지냈다. 여행의 기억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캐스커’는 음악 여정의 2막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알 듯 말 듯 알 수 없는 한 치의 사람 속을 알고 싶어 했어요.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왔죠. 이번엔 ‘진짜 알 수 없는 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어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것들, 대자연의 이야기요.”(이준오) “그동안의 틀을 깬 음악이 나온 것 같아요.”(융진)

한 치의 사람 속과 압도적인 규모의 대자연은 그래서 어떻게 다를까. 이준오는 “음악이 나오고 보니까, 한 치의 사람 마음을 모르는 것도 쓸쓸하고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것을 모르는 것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더라”고 했다. 음악의 관점이 달라졌어도 ‘캐스커’ 음악이 주는 쓸쓸한 정서는 그래서인지 여전히 넘쳐흐른다.

이번 앨범에 실린 ‘산’은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진 곡이다. 이준오는 사운드를 먼저 만들고 편곡까지 마친 뒤 가사를 붙이던 작업 방식을 뒤엎을 만한 경험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아이슬란드의 서쪽 길을 홀로 달리는데 문득 쓸쓸함이 무겁게 덮쳐왔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까지 보고 온 풍경들은 제가 태어나기 몇 억 년 전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행에서 돌아와서 ‘좋았다’고 하면 그만이에요. 그게 갑자기 되게 서럽게 느껴졌어요. 그 때의 그 막막함이 앨범 콘셉트가 됐고, ‘산’이라는 음악으로 나왔어요.”(이준오)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나 외로움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산, 그 옆을 흐르는 강, 척박한 땅, 10월만 돼도 낮에서 밤으로 급변하는 곳. 아이슬란드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쓸쓸함을 경험했다.

이준오는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풍경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그런 생각과 사실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거기에서는 제가 하루살이 같은 존재예요. 누군가와 헤어져서 슬프고, 누가 나를 받아주지 않아서 슬프고 하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말로 못할 어떤 서러움이 들더라고요.”

캐스커는 인디씬에서는 드물게 다작을 했다. 2003년 데뷔해 10년 동안 6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게 뭔가 ‘어색했다’고 한다. “좋아하고 존경하던 뮤지션들보다 더 앨범을 많이 냈더라고요. 뭔가 멈춰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이준오) “달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쉬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전 좋았어요.”(융진)

그동안 이준오는 ‘더 테러 라이브’ ‘더 폰’ 등 4편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했고, 융진은 피처링을 하거나 광고 일을 하거나 여행을 다녔다. 동네를 좀체 떠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좀 돌아다녔다. 여행과 다른 작업의 경험은 ‘캐스커’ 음악을 더 풍성하게 했다는 게 두 사람의 이야기다.

캐스커는 방송을 거의 하지 않는다. 뮤지션이 음악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음악을 다루는 방송이 별로 없고, 있다 해도 음악에만 집중할만한 무대는 찾기 힘들다. 미디어의 속도에 맞추려면 원치 않아도 해야 할 일과 포기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방송에 나와도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캐스커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저희는 정면 돌파하는 쪽이에요. 위험성은 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몇 년이 지나도 힘을 가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이준오) “‘캐스커’가 잘 하는 음악을 계속 들려드리려고요.”(융진)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