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高)가계부채 국가들이 부채 총량을 줄이거나 채무상환능력을 키운 반면 우리나라 부채 상황은 질적으로 오히려 악화되는 등 나홀로 역주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채무상환능력을 보여주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 비율(DSR)은 고부채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국민의 부채상환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64%다. 이는 미국, 일본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덴마크(310%), 노르웨이(215%), 스웨덴(172%) 등 일부 유럽국가 및 호주(188%)보다는 낮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8개국 정도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부채증가율, 가구 채무부담 등 가계부채의 세부 항목에서 우리와 고부채국가들 상황이 상당부분 역전됐다. 고부채국가들은 금융위기 후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채무상환능력이 양호해지면서 부채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 상황을 맞이했다.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경우 2008~2013년 우리나라는 8.9% 증가했다. 이 같은 부채증가세는 고부채국가인 스웨덴(7.6%), 노르웨이(6.0%), 호주(6.3%)보다 가팔랐다. 덴마크는 아예 이 기간 부채비율이 8.6% 감소했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각국 통계청 조사결과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등은 지난해 DSR가 4.6~9%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 DSR는 21.5%나 돼 고부채국가들보다 최대 5배 가까이 높았다. 대출 중 만기 일시 상환 비중은 줄고 원금 분할상환이나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의 비중이 늘어난 게 채무상환 부담을 늘린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다 저축률, 자영업자 비중 등 가계부채에 대한 대응력을 키울 수 있는 내성도 우리나라가 현저히 떨어졌다.
OECD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 스위스, 스웨덴, 호주 등은 가계저축률이 9.7~17.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6.3%로 턱없이 못미쳤다. 영세 창업 등으로 빚 문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영업자 비중도 우리가 단연 높았다. 2013년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우리나라가 22.5%로 고부채국가들의 2~3배가량 됐다.
부채상황이 악화되는 이유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와 고가계부채국가들 간 디레버리징(부채축소) 대처 차이를 거론했다. 한은 윤면식 부총재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선진국에서 먼저 발생하면서 그 영향을 직접 받은 북미 및 유럽의 선진국에서 디레버리징이 급격히 이뤄졌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아 디레버리징 필요성을 적게 느끼다보니 가계부채 대처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또 고부채국가들의 경우 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200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다 우리와 달리 은퇴계층의 연금소득이 높은 점도 부채에 대한 방화벽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부채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민간소비 확대, 가계 재무건전성, 금융안정 등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선제적인 부채 리스크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금융부채 비율 (단위:%)
덴마크 310
노르웨이 215
스위스 197
호주 188
스웨덴 172
한국 164
일본 129
미국 114
(2013,2014년 기준 자료:OECD 등)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 (단위:%)
호주 8.9
미국 9.9
노르웨이 8.8
스웨덴 4.6
한국 21.5
(2014년 기준 자료:IMF 등)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단위:%)
덴마크 9.0
노르웨이 7.0
스웨덴 10.6
호주 10.3
한국 22.5
(2013년 기준 자료:OECD)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기획] 금융위기 후 韓 가계부채 나홀로 역주행… 원리금 상환부담, 스웨덴 5배
입력 2015-11-23 12:49 수정 2015-11-23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