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라이벌이자 동지”… 평생 함께 한 YS와 DJ

입력 2015-11-22 09:06
김영삼(YS)이 언급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은 김대중(DJ)이다. 두 사람은 민주화 투쟁을 위해 손을 잡았던 ‘동지’였지만, 권력 앞에선 각각 상도동계(YS)와 동교동계(DJ)라는 야당 2대 파벌 수장으로서 일생을 ‘라이벌’ 관계로 살았다.

두 사람은 출발부터 달랐다. YS는 경남 거제의 갑부집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반면 DJ는 전남 신안의 한 외딴섬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이 전부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었다.

출신 배경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힘을 모아 1970~198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반독재 투쟁을 이끌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1987년의 직선제 개헌 투쟁에서도 손잡고 전두환 군부정권과 싸웠다.

그러나 두 사람은 권력을 눈앞에 두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1968년에는 야당인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YS가 DJ를 눌렀고,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YS가 유리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DJ가 승리했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계기는 1987년 야권 후보단일화 협상이었다. 서로 후보로 나서겠다고 분열한 두 사람은 YS는 통일민주당, DJ는 평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 결과 민주개혁 진영의 분열을 등에 업고 신군부 세력인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6년 만에 찾아 온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후보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정권을 군부 출신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반목을 거듭했다. 1990년 1월 YS는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제2당인 통일민주당(민주당), 제4당인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을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켰다. DJ가 이끌던 평화민주당은 유일한 야당으로 남게 됐고, YS는 민자당 대선후보로 나서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DJ도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YS 정권시절 DJ는 차기 집권을 위해 ‘어제의 동지’였던 YS를 맹렬히 공격했다. YS는 대통령 퇴임 후 DJ의 노벨상 수상까지 깎아내리면서 반격했다. 남북관계와 통일 등 이념문제에 있어서도 YS는 보수, DJ를 진보의 목소리를 대표하면서 대립했다. 여기에 YS는 영남, DJ는 호남의 대표 정치인으로 각인되면서 뿌리 깊은 지역관계까지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YS는 지난 2009년 8월 병마로 입원해 죽음을 앞둔 DJ를 전격 문병, 화해를 선언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DJ 죽음을 앞두고 두 사람은 분열과 반목을 씻어내는 역사적 화합을 이뤄낸 것이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