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0시21분 향년 89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정치의 산 증인이자 상징으로 꼽힌다. 89년간 YS의 인생역정은 독재정권, 산업화, 민주화시기를 거치는 동안 시련과 영광의 연속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만 25세에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역대 최다인 9선 의원을 지낸 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YS는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서 태어났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입학, 졸업한 뒤 장택상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했다. 손명순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거제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5,6,7,8,9,10,13,14대 등 9선을 지내게 된다.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다시 당선된다.
1960년대부터 한국 정치의 거두로 성장한다. YS는 1963년 군정연장 반대집회·가두시위로 서대문형무소에 23일간 수감되기도 했다. 제5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 당선을 위해 민정당 대변인 활동을 했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됐다.
1970년부터 그는 이른바 ‘40대 기수론’의 선봉이 된다. 그해 제7대 대선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 출마했고, 이듬해엔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당선을 이어갔다.
1972년 유신 선포에 미국에서 급거 귀국했다 가택연금을 당한 그는 반유신투쟁 전개했다. 1974년엔 만 45세로 최연소 야당총재가 된다. 그해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것이다. 1979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재선출된 그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때 경찰에 강제연행됐고, 당시 법원 결정에 의해 신민당 총재 직무를 집행 정지를 당한다. 또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는 시련을 겪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불법 가택연금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81년 민주산악회 발족시킨 뒤 2년 뒤 23일 간 민주화를 요구하는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4년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발족시켜 공동의장에 추대됐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한 후 통일민주당 창당해 6월 민주시민항쟁을 주도했다. 통일민주당 총재로 그해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했으나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한다.
1990년은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옛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된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로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12월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돼 최초의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김영삼 전 대통령, 89년간 시련과 영광의 인생역정
입력 2015-11-22 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