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운의 총서기’ 후야오방 사후 26년만에 공식 복권

입력 2015-11-20 20:21

1980년대 학생운동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났던 '비운의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시진핑(習近平) 체제에서 '공식복권'됐다.

20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해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는 중국이 그의 사후 26년 만에 '공식 복권'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개혁·개방의 선구자인 후야오방은 1987년 공산권 몰락 위기 속에서 발생한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축출됐다.

중국 공산당은 1987년 당중앙(당중앙위원회) 문건을 통해 후야오방에 대해 "정신적으로 오염됐고 자산 계급 자유화에 반대하는 당을 배척했다. '전반서화'(全盤西化·서양 문화 전체를 받아들이려는 사조)에 대한 요구를 용인하고, 학생운동 발생을 야기했다"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그의 사망(1989년 4월 15일)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사후에도 "당을 배척했다"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그는 같은 공청단 계열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서서히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5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 전 총서기 탄생 90주년 기념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와 쩡칭훙(曾慶紅)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참석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복권 조치가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유족 측은 과거 후야오방에 대한 정치적 결정은 당중앙의 문건을 통해 이뤄진 만큼 그에 준하는 복권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시 주석 등 당의 최고지도자들이 이날 좌담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중앙위가 이번 기념식을 개최하고 이 자리에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를 포함해 당중앙을 대표하는 상무위원들이 전원 참석한 만큼 후야오방에 대한 복권 조치는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그의 공적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간부 양성기관인 중앙당교 신문사가 지난 16일 '후야오방 동지와 이론동태-후야오방 동지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를 연 데 이어 중공중앙(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문헌편집위원회가 전날 인민출판사를 통해 '후야오방 문선'을 출간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자체 제작한 후야오방 다큐멘터리를 이날부터 사흘 연속 방영한다.

그동안 후야오방의 공적 거론을 금기시해왔던 중국 언론들은 이날 사설, 시민 인터뷰 등을 통해 후야오방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중 하나인 텅쉰(騰迅)은 이날 후야오방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소개하며 그가 하마터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운명이었다는 점을 적극 부각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20일은 후야오방이 태어난 날"이라며 "(우리는) 야오방을 그리워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