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스무해 동안 그를 기억해 온 사람들…20주기①

입력 2015-11-20 00:01 수정 2015-11-20 01:02
페이스북 페이지 4EVER 김성재
(김성재 20주기①)지난 15일, 늦가을이 겨울로 변해가는 길목이었다. 며칠을 속이 시끄럽도록 흩날리던 빗방울이 멎고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가을나무들을 흔들었다. 아직 촉촉이 젖은 땅 위로 뒹구는 낙엽 위에 온화한 햇살이 묻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추모공원에 잠든 김성재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묘하게도 상쾌한 느낌이었다.

북한산 기슭에서 故김현식, 故임윤택, 故박용하 등 많은 예술인이 모셔져 있는 분당으로 묘역을 옮긴 지도 오래다. 추모공원 입구를 따라 쭉 뻗은 산비탈을 오르다 보면(경사가 무척 가파르기 때문에 극도의 숨 가쁨을 경험해야 한다. 김성재의 동생 김성욱은 이날 열린 추모 모임에서 “겨울에는 아이젠을 착용해야 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고개를 돌린 자리에 푸른색 래커 스프레이로 쓰인 ‘DEUX FOREVER’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숨을 고르며 추모비가 세워진 자리를 올려다보면 누렇게 변한 잔디 사이에도 색색깔의 꽃들이 가득하다. 분명 헌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싱싱한 꽃들이다. 근처에 비치된 쇼케이스에는 아직도 팬들의 사랑이 그득 차 있었다. 발신 날짜가 최근인 편지도 있었다. 추모비며 노래비에 앉은 낙엽들을 털어내고 나니, 뒤켠에서 인기척 같은 소리가 났다. 멈춰 있던 바람개비들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마치 이 공간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듯했다.

이날 여의도 모처에서는 김성재의 20주기 추모 모임도 열렸다. 모임 장소에 들어서니 김성재의 어머니 육영애 여사와 동생 김성욱의 미소 띤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은 가족처럼 친근하게 이들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20년을 이어져 온 인연의 농도는 몹시도 진했다.

당초 10분 남짓의 추모 영상을 감상한 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추모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육 여사는 상영에 앞서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어떻게 김성재를 기억하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서 모임을 갖게 됐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김성욱이 담담한 목소리로 모임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전한 뒤 추모 영상을 틀려고 했으나 기술적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상영이 지연됐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던 듯싶었다. 영상을 본 뒤에는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안타까움이든 넘쳐흐르는 감정들 탓에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김성욱은 말하고, 팬들은 들었다. 이제는 마흔이 넘은 그가 영원히 스물셋에 멈춰있는 형의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할 때 함께 나이를 먹어 온 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형 김성재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남을 웃기는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만일 김성욱이 웃어주지 않으면 “네 개그 코드는 너무 후지다”며 농담 섞인 면박을 건넸다든가, 잠깐 토라졌다가도 돌아서면 풀리는 해맑은 사람이었다든가 하는 유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김성욱은 지난 20년을 뒤로 하며 김성재라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 나갔다. 가끔 슬프고 우울해지는 순간도 오겠지만, 그보다는 크게 조명된 적 없는 ‘아티스트 김성재’, ‘크리에이터 김성재’에 대한 말들을 해 보자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주최한 행사에 김성재와 김성욱 형제가 신던 신발이 출품되기도 했다(이 신발은 세계 각국에 차례로 전시된 후 최근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발 하나로도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해 본다면 김성재를 기리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김성욱은 그의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맴돌았을 김성재 기념 관련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그러던 중 추모 영상 상영이 시작됐다. 스크린에는 듀스의 ‘상처’ 뮤직비디오 오프닝이 떠올랐다. 어두워진 상영관은 김성재의 절규 같은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윽고 동생 김성욱 1집의 ‘겨울선물’이 흐르더니 듀스 활동 당시 김성재의 모습을 담은 조각영상들이 이어졌다.

관객들의 ‘엄마 미소’가 터졌던 것은 1995년 콘서트 중 자기소개를 하는 김성재의 모습이 나왔을 때였다. 자신을 가리켜 “언제나 말 못하고, 말주변 없는 김성재입니다”라고 말한 뒤 관객석에 있던 동생을 무대 위로 올리던 그와 당시 군인이던 김성욱의 앳된 얼굴에 팬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말하자면’으로 솔로 데뷔했던 1995년 11월 19일의 그가 영상 속에서 해맑게 웃을 때는 관내가 일순 숙연해졌다. 이어 팬들이 김성재에게 보내는 편지가 공개됐다. 내내 웃는 낯이던 팬들의 눈시울과 코끝은 어느새 붉어졌다.

상영 종료 후 눈물을 흘리는 팬들을 본 김성욱은 잠시 상영관의 불을 끄고 자리를 피해 주기도 했다. 가족인 그가 오히려 팬들을 위로하는 풍경이 감동적이었다.

이후 가족과 팬들은 분당의 추모비로 이동한 후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더욱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1995년 11월 20일을 기억한다. 어느덧 2015년 11월 20일이 됐다. 23년 7개월 하고도 이틀을 살다 간 김성재와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멈춰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새로 만들어 갈 기억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사진 = 육영애 여사, 김성재·김성욱의 꿈꾸는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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