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세상 앞에서 김성재의 어머니 육영애 여사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항간을 떠도는 거짓들을 고치기 위해 용기 내어 입을 열면 더 큰 시련이 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김성재 사망 20주기를 맞아 ‘성재를 위한 고요함’ 대신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의 ‘수다’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육 여사를 만났다.
“몇 년 전까지는 언론중재위원회에도 많이 갔었어요. 마약이다, 자살이다 하는 기사나 글들 수정 요청하러. 옛날에는 그런 적도 있어요. 웬 할아버지들이 ‘호텔방에서 계집애하고 자빠져서 잔 놈을 싸고 도냐’면서 팬들에게도 막 욕을 하는 거예요. 보다 못한 팬들이 ‘성재 오빠 어머니시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시나’라고 화를 내 주면 오히려 ‘왜 못 하냐’면서 더 버럭 하는 거야.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그냥 상대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어요.”
아들의 빈자리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에 떨던 육 여사의 마음은 아무렇게나 던지는 차가운 한 마디, 한 마디에 맞아 멍이 들었다. 그러나 육 여사도 나름의 극복법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최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양새가 김성재와 판박이인 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며 기뻐했다. 어떤 면이 닮았냐고 질문하니 “아주 특이한 생각을 하고, 그걸 꼭 실천하고, 성공적으로 이뤄 내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면 꼭 저에게 ‘그거 괜찮은 것 같지 않아?’라고 물어요. 제가 괜찮다고 하면 ‘엄마 역시~ 해 보자!’라고 말하곤 했어요. 동생 성욱이는 형이 뭘 하면 그걸 보고 있다가 ‘아닌데, 이걸 이렇게 하면 더 좋은데’라는 생각을 하는 애였어요. 성욱이가 ‘형! 그거 내가 해 볼게.’ 이려면 성재는 ‘어, 성욱아, 네가 해 봐.’ 그래서 잘 만들어 놓으면 또 성재가 성욱일 붙잡고 ‘크으으~ 와~ 역시 성욱인 내 동생이야!’ 이러는 식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
그렇게 살갑던 형이 갑자기 떠난 뒤 김성욱 역시 실의에 빠졌다. 형이 남긴 물건들을 하릴없이 들여다보며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던 그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을 터다. 그러나 요즘은 다섯 살배기 딸아이가 크는 것을 보며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고. 육 여사는 “성욱이가 그 때 책을 엄청 많이 읽더니 왕수다쟁이가 됐다”며 웃는다.
“얼마 전 추모 모임날도 봐요. 한 시간을 혼자서 수다를 떨기에 전 ‘팬들한테 말 좀 시키랬더니 왜 저 혼자 떠들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성욱이도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턱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세 모자는 유독 사이가 좋았다. 육 여사는 “절간 같이 조용하던 집에 성재가 들어오면 시끌벅적해졌다”며 매일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는 생전의 김성재 만큼 대화가 풍부해진 김성욱과 육 여사다.
“걔(김성재)는요. 스케줄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오만가지 얘기를 다 했어요. 성욱이랑 내가 재밌어서 듣고 있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재미가 없어졌죠. 지금이야 성욱이도 말이 많아졌지만요.”
그러면서 육 여사는 세 모자가 나눴던 이야기와 그날의 분위기까지 전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와 동생을 찾으며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들뜬 듯이 말하는 김성재의 모습, 단란한 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엄마 엄마, 아까 있잖아. 라디오 가는데 만남 노래 부른 사람이랑 제임스 딘 팬티 만든 사람 둘이 있는데, 내가 신기한 풍경을 봤지.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 둘이 막 싸워! 그런데 컷! 하면 갑자기 상냥해지는 거야. 그러다가 또 촬영 시작하면 싸우고, 컷! 하면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엄마, 그 둘이 장난 아니야. 연기 캡이야 캡!’이러면서 자기가 본 연예인 얘기도 했어요. 또 하루는 방송국에 가는데 ‘엄마! 이거 봐 이거’ 하면서 종이를 내밀어요. ‘세상은 요지경’ 부른 가수 사인을 받아 온 거야. ‘이게 누구 사인인 줄 알아? 요기도 짜가!’ 그러면서. 대기실 가서 ‘사인 좀 해주세요!’ 그랬대요. ‘엄마, 멋지지 않아? 요기도 짜가! 조기도 짜가! 내가 그래서 그 아줌마 사인을 받았어.’ 지금도 집 어디에 그 사인 있을 거예요.”
“활동할 때는 극성팬들이 자꾸 물건을 가져가고, 새 옷도 잘라가고, 머리도 뽑아 가고 그러잖아요. 주민등록증 같은 건 아예 남의 거야. 하도 물건이 없어지니까 나중에는 집에 들어오면 식탁 위에 주머니에 있는 걸 다 빼 놔. 그리고 아침에 그대로 넣어 가지고 가는 거야. 그런데 가끔 요만한 작은 쪽지가 끼어 있더라고요. 차번호가 적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런 걸 써 갖고 다니는지 물어 보니까, ‘오늘 같이 놀았던 애들 중에 여자애가 있어서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잘 데려갔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적어 놨지.’ 이러더라고. 아침에 눈 뜨면 전화해서 잘 갔나 확인도 하고. 성재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봐도 참 괜찮은 남자애였어요. 배려심도 깊고.”
“또 옛날 음악방송 무대에서는 성재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을 때도 있었어요. 현도랑 성재가 하난 저기 가 있고 하난 여기 있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니까 카메라가 못 쫓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성재가 ‘아무 거나 내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까 어떨 땐 사람들이 내가 어디 있는 지 못 찾아서 하나도 안 나와. 내가 어디 있는 지를 모르나봐. 잘 못 찾아’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고.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 두 대가 찍더라고요. 나중에는 ‘두 귀신(듀스)들 때문에 우리가 고생 많이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러면 또 저는 ‘아 그랬어요, 죄송해요…’라고 사과하고(웃음).”
육 여사는 1998년 김성재의 솔로 데뷔곡 이름을 딴 책을 출간했었다. 이 책을 통해서나마 더 많은 사람들과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터다. 그러나 여기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책을 냈는데 출판사가 선수금을 받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말이나 해 보려고 가 보니까 출판사가 문을 닫아 버렸더라고. 전화번호도 싹 바꿔버리고. 책들도 다 버리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다 차에 싣고 왔죠. 어떻게 하다 보니 책을 판매할 수 있게 됐는데, 하루는 사인회를 열었어요. 줄이 줄어들질 않는 거예요. 정말 그로기 상태가 될 때까지 사인을 했죠. 나는 대체 누가 보나 싶었는데 또 많이 읽혔는지, 길을 가다 보면 엄마들이 나를 붙잡고 울었어요. 하루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는 거야. 나중에는 누가 날 붙잡고 울면 ‘이 엄마가 책을 읽었나 보다’ 했다니까?(웃음)”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공감을 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가 팬페이지에 이따금씩 올리는 글만 보더라도 만만치 않은 필력이 느껴진다. 화려한 미문은 아니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문장들이 잔잔한 울림을 주곤 했다. 육 여사는 스스로 김성재의 이야기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며 말을 이었다.
“그런 책을 쓰고 싶었어요. 추리소설이나, 이런 것도 써 보고 싶었고. 잘만 해 주고 공감 되는 이야기로 써 준다면 성재 이야기를 매체에서 다룬다고 해도 괜찮겠죠. 성재의 좋은 면을 재조명해주거나, 거짓이 없는 사실을 담아 준다면 좋은 거죠. 그렇지만 모든 것을 잘 알아야 각색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가족들과 서로 의논을 해 가면서 쓰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 먹고 노래방에 가서 연습을 하던 김성재. ‘간지 나는’ 내레이션을 하고도 “왕소름이 돋는다”며 겸연쩍어 하다가 야단을 맞곤 하던 김성재. 가족들과 친구들을 그 누구보다 아끼던 김성재. 그 사랑을 다 표현할 줄 알던 김성재. 남자다운 외모와 다르게 애살 있던 김성재. 풀이 죽거나 토라져 있다가도 금세 웃음을 보일 줄 아는 해맑던 김성재.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던 김성재.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김성재들을 어머니 육 여사가 공유해 준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났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차마 적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
“그랬던 게 기억나요. 친구들과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면 저도 걱정돼서 잠을 잘 못 자잖아요. 그런데 자꾸 일찍 자래. 어떻게 자냐? 물었더니, ‘엄마, 있잖아, 그럴 때 좋은 말이 있어. 무소식이 희소식. 엄마! 나쁜 일 있으면 즉각 전화가 와. 아무 소식이 없으면 그냥 놀고 자빠져 있는 거야. 생각할 필요가 없어. 엄마는 그걸 딱 기억하고 살아야 돼.’ 그렇게 나를 안심시키더라고. ‘엄마가 자면 내가 들어와 있든지 자고 들어오든지 할게. 나는 항상 매니저들이 끌고 다니고, 여자애도 아니고 남자애잖아. 정말 무서운 일 아니면 누구한테 맞든지 해도 오거든 엄마? 아무 소식이 없으면 아무 사고가 없다는 거니까 자도 돼.’ 그러고 나서 다음날 보면 정말 집에 들어와서 자고 있죠. 요즘 성재소식이 없는데… 무소식인데, 희소식이 안 와요… 왜일까요?”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사진=육영애 여사, 4EVER 김성재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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