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의 서명, 비준, 수락 또는 승인을 얻기 위하여, 개인의 인신 또는 개인적인 능력에 대해 강제 또는 강박을 가하는 행위는, 국가가 조약의 무효성을 주장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정당화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에 인정된다고 생각된다.”
1963년 국제연합 총회에 제출된 국제연합 국제법위원회(ILC)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교섭자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비준을 얻기 위한 강제를 가하였다고 비난받는 많은 실례를 역사는 제공하고 있다”며 그 실례로 “보호조약의 수락을 얻기 위해 한국 황제와 그 각료들에게 가해진 강제”를 다른 3가지 사례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황제나 각료 등 개인을 강제해 체결된 조약에 대한 무효성 주장은 정당하다는 판단과 함께 그 실례의 하나로 1905년 체결된 한국보호조약(을사늑약)을 예시한 이 보고서는 국제법 전문가 25명이 참여한 ILC 국제법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963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도츠카 에츠로 전 류코쿠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는 20일 열리는 한국역사연구원 주최 ‘을사늑약 11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이 보고서를 처음 발표한다. 국제법 전문가이자 인권변호사인 도츠카 전 교수는 1992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해 ‘sex slave(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유엔 무대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1992년 이 보고서를 발견한 뒤 연구를 계속 해왔다는 도츠카 전 교수는 미리 공개된 발표문에서 “이 보고서를 가지고 1963년 국제연합 총회가 1905년 한국보호조약을 무효로 판단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이런 사실을 국제연합 문서자료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문제에 관한 역사인식을 크게 진전시키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제법위원회가 국제조약의 무효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을사늑약 등 4가지 사례를 제시한 것은 1935년 발표된 ‘하버드 법대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다. 1935년 국제연맹은 ‘보호조약'의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역사상의 조약 3개 중 하나로 을사늑약을 꼽은 ‘조약법에 관한 연구(하버드 법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병합 무효화 운동과 구미(歐美)의 언론과 학계'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하버드 법대 보고서의 작성 경위를 조사한 결과, 국제연맹의 실행위원회는 주제를 새롭게 개척하자는 취지에서 당시 국제법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던 제임스 가너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를 작성자로 선정했다”고 밝히고, “하버드 법대 보고서의 조약법 판단은 1963년 유엔 국제법위원회의 보고서에 그대로 반영되고, 그 보고는 같은 해 유엔 총회에 제출, 채택됐다”고 말했다.
도츠카 전 교수는 “문제의 기재 사항에 관한 토의가 이루어진 국제법위원회 제15회기(1963년 5월 6일∼7월 12일)에는 추르오카 센진(전 국제연합 대사)씨가 일본인 전문가위원으로서 출석했다”며 “일본의 미디어도 일반시민들도 알지 못했지만, 일본 정부는 앞의 자료를 당시부터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1963년 유엔 총회,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은 무효" 보고서 채택
입력 2015-11-19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