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강한 욕망의 ‘4중주’로 발화시킨 두 배우
연극 ‘4중주’(연출 채윤일)가 강렬하다. 하이너 뮐러(Heiner Muller)의 작품은 난해하다. 극의 전개는 친절한 안내가 없다. 인물의 행위와 대사의 감정 상태의 온도를 측정 할 수 있는 지문이나 극적 동기의 논리성은 생략된다. 텍스트로만 밀러의 내면과 극중 인물의 삶을 골라내고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이너 밀러의 4중주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1741~1803)의 편지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 gereuses)의 편지소설을 인용한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문란한 성(性)적 풍경을 들추어낸 작품이다. 대통령과 간통하지만 결국 버림 받은 극중 인물 메르테이유(김소희 분)와 대통령의 부인을 정복하려는 발몽(윤정섭 분) 두 배우의 연기가 강렬하다.
밀러의 ‘4중주’는 2006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된 슬로베니아 연출가 세바스티안 호벳(Sebastijan Horvst)에 의해 공연되어 독창적인 해석과 밀도 있는 간결함으로 호평을 받았다. 국내 극단에 의해서는 70년대 후반부터 강한 실험연극으로 연극인생 40년 동안 시대에 강한 펀치를 날렸던 작은 거인 채윤일 연출에 의해 2011년도에 공연되어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노장의 연출은 식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메르테이유 역에 노련한 배우 김소희, 발몽 역에 윤정섭으로 배치하면서 두 배우의 가슴에서 튀는 전류의 감정은 화력강한 욕망의 ‘4중주’로 발화시킨다. 4년 만에 다시 들고 나온 채윤일의 사중주는 더 숙성되고 배우들의 연기 온도는 더 뜨거워 졌다.
지배와 소유의 성적폭력의 야만적 내면의 역할놀이
밀러는 이 작품의 주요 극적구조를 차용하면서 세계3차 대전이라는 세기말적 질서의 황폐화된 풍경을 가상의 극중 시·공간으로(프랑스 혁명 전의 살롱·제3차 세계대전 후의 벙커) 설정한다.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에서 극중인물 발몽(윤정섭 분)과 메르데이유(김소희 분)의 혼돈과 혼란의 타락한 성욕의 행위와 욕망과 성적유희만이 꿈틀댄다. 추악한 이들의 행위는 타락한 인간욕망의 거침없는 성행위를 통해 진실성을 구원하려는 본능과 권력지배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인류의 파멸과 혼란은 소유와 집착으로 인간내면으로 전이되고 얼굴은 욕망의 가면으로 덥혀진다.
발몽과 메르데이유의 성(性)행위는 욕망의 놀이이며 폭력과 억압, 죽음과 파멸, 혼돈의 경계에서 인간의 영혼성은 파괴되고, 진실은 죽음으로 소멸된다. 타락하고 퇴폐한 성(性)행위는 꺼져가는 시대의 삶에 발악거리는 생명의 숨소리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놀이다. 무질서한 폭력과 억압의 세계에서 진실은 파괴되고 죽음으로 회복된다. 추악한 시대의 어두움은 타락한 권력의 욕망으로 집착되고, 지배와 소유의 성적폭력의 야만적 내면은 역할놀이를 통해 극대화 된다.
메르데이유와 발몽은 강렬한 성적놀이는 권력의 둘레에서 진실성을 회복 할 수 없는 집착과 그 내면에서 성장하는 욕망이다. 타자의 죽음은 곧 자신의 내면의 행방이고 자유다. 욕망의 진실성을 현란한 성적행위로 전복한다. 채윤일의 4중주는 인간의 추악한 지배의 욕망을 역할놀이를 통해 가면 속에 가려진 내면을 바라보며, 죽음의 종점으로 치닫는 파멸과 유희의 놀이다.
연극배우로서 두터운 관객층을 안정되게 확보하고 있는 노련한 배우 김소희가 과감한 연기를 펼친다. 발몽을 향해 침투되는 성적욕망의 발화는 강렬하고 뜨겁다. 대표작품 <느낌극락 같은>. <경성스타>, <고곤의 선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혜경궁 홍씨> 등 그녀가 출연한 전작들을 관람한 관객들은 배우의 과감한 태도와 도전에 흠칫한다.
발몽을 연기하는 배우 윤정섭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층 배우로써 한층 성숙해진 깊이를 보인다. 발몽은 트루벨 부인으로 메르데이유는 발몽으로 역할놀이를 하면서 펼치는 장면에서 윤정섭은 감정 몰입의 초월적 한계성을 뛰어넘고 연기의 미학을 그려낸다.
<카텐자>(1975),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9), <0.917>(1984), <누구세요?>(1986), <불가불가>(1987), <싼싯김>(1997), <정말, 부조리하군>(2007),<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2013) 등 그동안 강하고 쓴 연극을 선보여온 채윤일 연출은 이번 작품의 난해함을 더 정제되고 절제된 예술적 미학을 담아낸다. 11월26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두 배우의 뜨거운 연기를 만나 볼 수 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
[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25. 김소희·윤정섭 두 배우의 변주 ‘4중주’
입력 2015-11-19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