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장면이다. 다음 달 5일로 예고된 ‘민중총궐기 대회’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시위대는 경찰이 폭력을 유도했다고 주장하지만 평화시위는 어떤 경우에도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이다. 집회 참가자 사이에서는 경찰의 강경대응이 빤한 상황에서 ‘진격’이라는 도발적 표현까지 써가며 청와대 진출을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쳇바퀴 돌듯 폭력이 반복되는 지금의 집회 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폭력을 낳는 폭력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무조건 청와대로 향하거나 경찰과 대치하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 관계자는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 청와대를 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차벽을 끌어낼 것이 아니라 각자의 요구사항이 담긴 종이를 차벽 너머로 날리는 등 메시지를 남기는 평화적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노동개혁 반대, 쌀값 폭락 대책 마련 등 여러 단체들이 내세운 11개 의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당시 집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은 “집회의 폭력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다뤄야 할 여러 의제들이 논의가 되지 않는 상황이 굉장히 안타깝다”며 “평화적으로 나아가되 앞으로 어떻게 집회를 기획할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노동당 구교현 대표는 “14일 집회는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시위였다는 게 문제였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다치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며 “시민들이 집회를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집회를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차벽, 최선인가
김상균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투경찰이 있을 때는 사람으로 벽을 형성했지만 전경이 폐지되면서 인력이 줄어 차벽으로 시위대 진입을 막고 있다”며 “경찰 입장에서는 대규모 집회 때 차벽을 설치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벽설치가 불법시위를 사전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역으로 불법시위를 촉발할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차벽이 아닌 다른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진입을 막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경찰은 진압의 형태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시위관리방식을 개선하고, 시위 주최 측도 목적달성을 위해 탈·불법 행동을 하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인권위 조사 돌입
국가인권위원회는 14일 집회 때 경찰의 시위 진압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전방위적 기초조사에 돌입했다고 18일 밝혔다. 물대포를 맞은 농민 백남기(68)씨의 생명이 위독해지는 등 과잉진압 논란이 일자 기본적 증거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인권위는 경찰이 해산 과정에서 물대포와 캡사이신 등을 과도하게 사용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인권위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조사관을 보내 관련 진술과 자료를 확보했다. 인권위 조사관들은 14일 집회 현장에도 나가 인권침해 행위를 모니터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증거가 모이면 인권위는 이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직권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인권침해와 관련한 진정은 아직 1건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권고하는 기관”이라며 “경찰의 인권침해를 다각도로 확인하고자 집회 참가자에 대한 조사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계사로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18일 오전 9시쯤 머물고 있는 관음전에서 조계사 부주지와 총무실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신변보호와 함께 현재 시국문제에 대한 조계종 화쟁위원회 중재를 요청했다. 화쟁위는 사회 현안과 갈등을 중재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조계종이 구성한 기구다.
조계사 관계자는 “19일 오후 2시 열리는 화쟁위에서 한 위원장의 요청 사항을 논의할 것”이라며 “다음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다음 달 초까지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조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창욱 박세환 심희정 홍석호 기자
사진=곽경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