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곳에 열매가 영그는 법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성과도 마찬가지다. 땀 흘리는 노력이 있어야 달콤한 결실이 있고 아픔과 슬픔을 견뎌내는 고통이 있어야 기쁨과 희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화가 이호신의 개인전이 11월 1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송갤러리에서 열린다.
제17번째 초대 개인전을 여는 이호신 작가는 사계절 생태계를 살피고 자연의 섭리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1998년에 발표한 ‘숲을 그리는 마음’(학고재 갤러리)과 2011년 ‘화신(花信)’(겸재정선미술관> 초대전 이후 국토의 사계절 생태와 산촌생활에서 발견한 생명의 숨결을 담아낸 것이다. 전시 제목이 ‘꽃 진 곳에 열매’다.
사계절 가운데 늦가을과 초겨울의 소재를 택한 것은 모든 식물은 꽃이 지고서야 그곳에 열매가 달린다는 이치를 밝히고자 함이다. 감, 고구마, 밤, 수수 등의 수확이 결실을 거두는 계절과 함께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보는 의미의 생태그림들을 선보인다. 생명과 상생의 노래로 곤충, 철새, 다람쥐, 지리산 반달가슴곰 등 먹이사슬의 관계를 함께 표현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자연환경의 중요성과 생태계의 과정을 제시한다. 모든 생명은 꽃 피우기를 원하지만 그 꽃이 지고서야 마침내 결실을 얻는다는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전시에서는 총 30점이 출품된다. 이 땅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30년간 순례의 붓길을 이어온 작가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작가는 앞서 ‘화가의 시골편지’를 출간했다. 순례자에서 마을 주민으로 변신한 화가의 행복한 시골살이, 봄꽃부터 겨울나무까지 자연 안에서 함께하지 않으면 포착하기 어려운 생생한 사계절 생태 이야기, 담백하고 생기 있는 따뜻한 그림들, 그리고 자연을 닮아 자연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상생의 풍경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작가는 한국 진경산수화의 전통을 새로이 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다채로운 색채를 응용해 ‘생활산수화’라는 독자적인 장르와 화풍을 추구해왔다. 이 땅을 순례하는 길 위의 화가가 되어 언제나 현장을 답사하고 화첩 사생을 기초로 하여 마음에 담은 뒤 붓을 들었다. 그의 그림들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세계, 우리가 잊고 사는 진정한 삶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2010년 지리산 자락의 산청 남사마을로 귀촌하여 그림 농사를 짓는 한편, 책읽기와 더불어 틈틈이 텃밭을 일구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지리산진경’ ‘가람진경’ ‘산청에서 띄우는 그림편지’ ‘우리 마을 그림 순례’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숲을 그리는 마음’ ‘길에서 쓴 그림일기’ 등이 있다.
“별들의 인드라망/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연을 풍성하게 느끼는 방법/ 오늘화실의 인연들/ 소나무와 검은 돌 하나/ 야성의 회복/ 600살 할배 감나무/ 아름다운 소멸/ 시골살이의 즐거움/ 저 산이 고운 까닭”(‘가을-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수십 년간 화첩 배낭을 메고 이 땅의 참된 풍경을 찾아 순례해온 길 위의 화가 이호신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그림을 만날 수 있다(02-730-582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이 땅의 참된 풍경 찾아 순례하는 길 위의 화가 이호신 ‘꽃 진 곳에 열매’ 백송화랑 초대전 11월18일
입력 2015-11-17 11:09